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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22. 2023

꽃과 나비와 벌

[바질키우기5] 꽃을 꺾지 않은 이유

8월 중순부터 바질 꽃이 자라기 시작했다. 꽃이 피면 바질 잎은 맛이 없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왜 바질 꽃을 따지 않았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세상 모든 것을 통달한 노스님처럼 "허허 그냥 제 모습대로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지만 사실은 꽃을 따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두다가 따야지 했는데 순식간에 바질 꽃밭이 됐다. 때로는 인간의 불성실함이 꽃밭을 만들기도 한다.


바질 꽃은 한마디로, 엄청나다. 아마 바질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마법같은 향내를 꽃으로 보낸 것 같다. 꽃과 꽃대 전체에서 강렬하게 응축된 바질 향이 난다. 얼마나 강한지 꽃을 꺾어두어도 잘 시들지 않고 오랫동안 푸르름과 향을 뽐낸다. 그렇게 한 곳으로 모든 에너지를 응축하다보니 자연스레 잎은 전보다 조금 작고 시들해질 수 밖에. 꽃이 지고 난 자리엔 까만 씨가 들어있다. 결국 바질은 자신의 DNA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렇게 모든 힘을 쏟았던 것이다. 생명이 가지고 있는 본능은 모두 똑같다. 물론 인간을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바질 꽃이 피기 시작하자 나비와 벌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바질 말고도 오이, 참외, 고추, 메밀들이 모두 꽃을 피웠는데 바질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나비는 그렇다치더라도 벌은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걸까? 늘 3-4마리의 꿀벌이 날아와 종일 일하는데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일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쁜 현대인의 삶을 잠시라도 내려놓고자 을지가드닝클럽을 시작했는데 정원을 자꾸 넓히다보니 결국 일거리가 자꾸 늘어난다. 여전히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주로 저녁에 와서 밭일을 하다보니 잘 보이지도 않고 속도도 느리다.


물론 벌들은 절대 야근은 하지 않는다. 해가 뜨면 어디선가 날아와 일을 하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귀신같이 사라진다. 벌은 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연의 원리에 입각해 2억년을 살아온 그들은 한 번도 근로기준법,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따위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방식으로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땅에 살아온 그들 종의 삶은 인류보다 행복할까.


벌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이내에 멸종한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그린피스가 벌의 군집붕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벌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도 벌이 사라진다고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도 적다고 한다. 하지만 이 얘기는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된된들 인류는 쉽게 죽지 않는다 라는 말과 거의 같다. 자연은 다양한 방식으로 뭔가 조금씩 잘못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야근을 하지 않은 벌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우리가 훨씬 더 우월하며 행복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조금씩 여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말로 벌이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을가클에 날아든 나비와 벌 그리고 거미까지


다리에 꽃가루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을지로 꿀벌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정말 귀엽다. 어떤 식으로든지 이들 의 2억년 삶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을지로 작업실에 벌이 날아든 이야기를 아빠에게 자랑삼아 전했다. 벌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한 지인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분은 은퇴 후 종종 뒷산에서 산책하길 즐겼는데 골프채를 지팡이 삼아다녔다. 그날도 그는 평소처럼 골프채로 산길 주변 덤불을 툭툭 치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만 말벌집을 건드리고 말았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말벌은 곧바로 칩입자를 공격했다. 놀란 그의 입 안으로 벌이 들어왔고 목 어딘가를 쏘인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사람의 삶도 다른 생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하나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뒤로 꿀벌이 아닌 다른 벌을 보면 빠르게 피하게 됐다.


우주는커녕 지구에서조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극히 일부분이다.

그럼에도 (꿀)벌과 인간의 삶이 함께 지속되기를 여전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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