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9일(토). 오늘은 대입 수시모집 진학상담을 하는 날입니다. 이맘때가 1년 중에 가장 바쁜 '수시 대목'입니다. 상담 희망 청소년이 많기에 30분 단위로 하루 종일 진행합니다. 어디가, 프로칼리지 등의 전년도 입시 결과와 교육청 자료, 사교육 업체 자료 몇 가지를 토대로 상담을 합니다. 상담에서는 진로 방향, 전형 방법, 학업 역량, 준비 정도, 수능 최저 학력 충족 여부 등에 따라 지원 전략을 세우고 지원 가능 여부를 확인합니다. 가끔 내담 청소년 중에는 최대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나 전년도 커트라인을 가정해서 지원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안하고 마음이 급해서이겠지요. 진학 상담은 데이터와 확률에 기반해야 합니다. 사기를 꺾지 않는 선에서 '확률'을 꼭 전제로 이야기하면서 조언하고 긍정 격려를 합니다. 수능 시험이 두 달이나 남아 있지만 불안해하고 자신감이 떨어진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중꺾마'와쓴소리
자신감이나 사기가 떨어졌을 때 위로나 공감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아주 가끔 특이하게도 따끔하게 쓴소리를 해주기를 원하는 청소년이 있습니다. 이럴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박성혁의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면서부터 도움이 되기 위해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쓴소리'를 하는 좋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자기 이해를 잘하는 청소년이 읽으면 효과가 큽니다. 너무 어린아이들이나 내면이 성장하지 못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에는 역효과가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사실 이 책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더욱 좋아하는 책입니다. 왜일까요? 쓴소리 대리 효과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음가짐과 시간의 중요함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은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자는 진도 차이는 능력 차이를, 능력 차이는 점수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런 차이는 극복하기 매우 힘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두 가지 차이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에는 시간의 차이, 마지막에는 마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연결해서 제 나름대로다시 정리하면 시간의 차이는 진도의 차이를 만들고, 진도의 차이는 점수의 차이를 낳고, 점수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를 가져오고, 능력의 차이는 마음의 차이로 이어지게 됩니다. 시간의 차이에서 시작된 '차이'는 결국 더 큰 마음의 차이로 끝나게 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여러 차이가 크지 않지만,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이런 차이는 물리적 관점에서 보면 극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차이입니다. 마음의 차이는 공부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지배하고 그 결과와 또 다른 공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부의 시작은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죠. 저자는 자신을 믿게 노력하고, 마음을 다지고, 키우고, 붙잡아 두는 데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이 딱 하나 있기는 합니다. '점수 차이'든 '능력 차이'든 '진도 차이'든 내가 다 돌파해 버리고야 말겠다는 독한 각오.", "그래요. 단 하나뿐인 돌파구는 바로 '내 마음속'에 있어요."
"아직 아무도 모르잖아요. 나 혼자만 알잖아요. 지금도 내 안에 꿈틀거리는,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내 가능성을요. 내가 얼마나 무섭게 달릴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화려하게 날아오를 사람인지, ", " 뜨거운 힘 한번 발휘도 못해보고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굳어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내가 나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요."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공부의 본질이 '경쟁'이 아닌 '성장'이라는 점이에요. 다른 놈 이기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니 늦었느니 아니니 하는 소리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소리입니까. 나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끝끝내 내가 열망하는 바를 이뤄내는가'뿐인데요."
요즘 인터넷이나 유튜브에는 공무원 일타 강사, 수능 일타 강사 등의 쓴소리를 모아 놓은 동영상이 인기가 있습니다. 참 이상한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잔소리나 쓴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쓴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니 웃기는 세상입니다. 그것도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듣고 싶어 한다니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의 쓴소리는 여전히 듣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나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에게서 쓴소리를 듣게 되면 관계에서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라도 해야 하니 쓴소리가 필요합니다. 집이나 학교에서는 듣기 싫은데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한 학원 선생님의 쓴소리는 재미도 있고 유행도 하니 '좋아요'도 누르고 추천도 해주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듣기 싫은 쓴소리는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원해서 듣는 쓴소리는 약이 됩니다. 쓴소리와 칭찬을 다 같이 잘하는 하이브리드형 부모가 최선이지만 그것을 잘하기도 어렵고 또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들의 쓴소리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힘든 학창 시절을 경험했던 선배들, 노력으로 유명 대학에 합격한 사람, 진로와 진학에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조언과 쓴소리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쓴소리를 듣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라고 조언을 합니다.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는 유명 강사들의 공부 쓴소리 동영상에는 욕설, 인신공격성 발언, 출세지향적 사고, 이분법적 판단, 극단적 경쟁체제 호도, 사회구조적 문제 외면, 의지와 노력 부족 탓하기, 개인에게 책임 전가, 특성을 무시한 진로 선택, 개인 발달차 무시 등 비교육적인 내용이 있는 경우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는 공무원, 경찰, 소방관 시험 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욕설과 비속어가 섞인 강연 동영상도 많고, 심지어 이를 흉내 낸 수능 수험생 대상 강의 동영상과 짧은 영상도 많습니다. 무제한적으로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뼈를 때리는' 효과가 있더라도 10대에게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정서적으로 완전히 성장하기에는 아직 멀었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면 아동 학대로 바로 고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인기와 유행 뒤에는 상업적 목적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지만 교육은 방법도 교육적이어야 합니다.
쓴소리는 관계가 좋지 않은 부모님이 하시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기 쉬우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헝겊 엄마, 철사 엄마'라는 해리 할로우(Harry Harlow)의 유명한 애착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에서 새끼 원숭이는 우유가 있는 철사 인형보다는 따뜻한 헝겊 인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접촉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이죠. 양육에는 차가운 이성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사랑도 필요합니다. 요즘 같이 과도한 경쟁 시스템에서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도 따뜻한 헝겊 엄마가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차가운 이성도 필요합니다. 역할 분담이 필요하고 조절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는 진로 발달 단계, 정서 심리적 상태, 성격 특성, 도움받기를 희망하는 내용과 정도에 따라 읽기 좋고 쉬운 책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해 주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상담이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어렵다면 그다음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독서입니다.
성공요소의절반은시간활용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진로 수업과 상담에도 많은 도움이 되니 책을 더 가까이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벽돌책'이라고 하는 책들도 좋아합니다. <종의 기원>,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총균쇠>, <정의란 무엇인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같은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저에게 독서란 진로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 이유에 대해 그 해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진로 문제와 진로 장벽 앞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독서를 권장합니다. 독서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진로 가치관에 따라서 다양한 선택을 하기에 독서 방향과 내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진로 목적과 목표, 마음 가짐, 자신에게 맞는 행동 방법을 찾고 행복한 진로와 직업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서적도 많이 봅니다.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긴 안목을 갖고 도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기에 지금 당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도움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발달 단계에 따른 과업이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첫 번째 공통점은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진화적 관점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칼 세이건은 우주적 관점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와 환경적 관점에서, 마이클 샌델은 정의의 관점에서,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적 관점에서, 요제프 슘페터는 경제와 정치적 관점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적 관점에서, 채사장은 지식의 카탈로그를 통한 통합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 접근을 합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거대한 시간에 대한 탐구라는 점입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우주의 시작에도 갔다가 지구 최초 생명체인 '루아'가 탄생한 시간에도 갔습니다. 기원전 3세기 '우파니샤드'가 만들어진 인도의 시간에도 갔다가 인간이 신이 되는 미래 시간에도 다녀왔습니다. 시간의 위대함을 느꼈고, 인간이 만든 사회는 개인의 진로가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만든 거대한 구조물 속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낱개의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잘 사용하는 지혜와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시간의 힘, 시간의 중요성, 시간의 필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성장에는 재능, 노력, 환경이 모두 필요하지만 시간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기껏 3년 동안의 성장만 봤습니다. 3월의 고등학교 1학년은 중학교 4학년 같아 보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은 철이 들고 어른 느낌이 나는 학생도 많습니다. 키도 많이 크고 신체의 변화도 있지만 내면도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중학교에 오니 더 큰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좌충우돌, 질풍노도, 상처투성이, 제멋대로인 모습이 3년이 지나면서 어느새 의젓하고 멋있고 늠름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 아니고 그들도 '이와 같은 성장통의 과정을 거쳤구나'하고 깨닫습니다.
성장은 짧은 시간 동안에는 직선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곡선적입니다. 특히 내면의 성장은 상승과 하강을 그리는 사이클의 모습을 띱니다. 그리고 가만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그 곡선은 우상향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깨닫고 시간의 힘을 믿고 조금이라도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와 교사, 우리 사회는 그들을 지지하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졸업하고 멋진 사회인이 되고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시간의 힘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유전과 환경에서 기인하는 정서 심리적인 개인차를 논외로 한다면 진로와 공부에서 마음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시간의 차이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는 일단 시간 투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능력 차이가 있다고 잘못된 믿음과 해석을 하곤 합니다. 잘하고 싶다면 그만큼 시간 투자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시간제한 테스트' 사회입니다. 공부도, 업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너무 익숙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응하도록 지나치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로 공부는 시간제한 테스트가 있는 짧은 공부가 아닙니다. 진로 공부는 좋아하고 잘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공부입니다. 조금 늦더라도 꾸준히 투자만 한다면 충분히 역전 가능한 장기 투자와 같습니다. 시간의 힘을 알고 자신의 진로를 위해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학창 시절보다 성인이 될수록 더 커집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에 노력의 시간이 더해진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