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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Lee Speaking Sep 01. 2024

동상이몽: 관계의 초상

같이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하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흐드러진 가로수 풀잎을 적시며 떨어지는 햇살이나, 흐르는 강물에 부서지며 반짝거리는 햇빛은 잠시나마 생각의 공백을 만들어낸다. 순간적으로 감동이 몰려오는 찰나의 순간은 주의력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허락하지 않는다. 생각으로 그 어느 곳을 여행 중이건 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이곳으로 주의력을 끌어와 정신 차리라는 듯이 세차게 나를 뒤흔든다. 잠시나마 이곳에 머물러 물끄러미 햇살을 응시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주의력은 슬그머니 달아나 버린다. 눈은 물살에 부서지고 나뭇잎에 부서지는 햇살을 응시하고 있으나 그것들을 '보고' 있지는 않다. 내 눈과 귀는 열려있지만 닫혀있다. 나는 생각에 잠겨있다. 나는 생각에 잠긴 채로 휘적휘적 걸으며 때때로 구름 점을, 마주 오는 사람들을 얼핏 보게 되지만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이따금 지나가는 말소리는 고막을 울리지만 나는 그게 어떤 말인지 이해할 없다. 나는 소리를 듣지만 '듣고'있지는 않다. 몸은 지금 이곳에 있지만, 나는 머나먼 과거나 미래에 있고, 따라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나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으로부터 단절돼 있다.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며 왼손으로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쁘게 오르내린다. 무성의한 질문과 무미건조한 대답이 한두 차례 오가더니 이내 침묵이 흐르는 식탁에 마주 앉은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한 사람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상대방도 내려놓는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투명한 벽이 허물어질 뻔했으나, 안타깝게도 한 사람은 여전히 현재로 오지 못했다. 스마트폰에서 마지막으로 본 화면은 주식 호가창이었나? 아니면 갖고 싶던 물건이나 내심 관심 있는 사람의 인스타그램이었나? 뭐가 됐건 간에 그 사람의 주의력은 여전히 관념 세계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으며, 지금 이곳으로 오는 길에 발목을 붙잡힌 상태다. 둘은 같이 있지만 여전히 함께 있지 않다. 둘은 견고한 벽에 의해 여전히 단절 돼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이미지가 구겨질까 봐 두렵다.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있는 이미지, 아는 것이 많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은 곧 존재 가치와 직결될 만큼 중요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관련 있어 보이는 아무 소리나 늘어놓거나, 현실성 없는 뜬구름 같은 소리라도 늘어놓으며 어떻게든 모른다는 사실을 숨긴다. 질문을 듣는 사람의 머릿속은 바쁘다.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막상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듣지도 못할 지경이다. 결국 질문자는 자신의 문장에서 한 두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맥락적 공통점도 없는 답변을 듣게 된다. 질문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질문을 하기에는 질문자 역시 두렵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따라서 자신은 이해했다는 척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에둘러 질문을 마친다. 궁금증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음에도.


남녀 한 쌍이 데이트를 한다. 남자는 친절하게도 차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차 문을 열어주는 남자의 머릿속은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남자'라는 자기 이미지에 대한 흡족함으로 가득하다. 남자가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상대방을 향한 관심과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족스러운 자기 이미지에 도취된 웃음이다. 친절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여성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은 남자의 이미지와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나 어쩌면 남성 역시 여성의 이미지와 함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만큼 대접받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여성 역시 도취되어 있다면,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그곳에 같이 있지만 함께 있지 못하다. 그 장소에 있는 것은 각자의 이미지이자 껍데기이며, 두 사람의 의식, 주의력은 각자의 관념 세계 속에서 자기 이미지를 강화하느라 바쁘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에 도취된 사람이 지어내는 미소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미지 강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상 보고 있어도 볼 수 없고, 듣고 있어도 들을 수 없으며, 같이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하는 동상이몽의 늪에 빠져, 이미지 강화에 힘쓰느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맺지 못한 채 단절되어 살아가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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