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마전의 어느 양계장으로 닭똥을 실러 가자고 하셨다. 마전이면 신촌을 지나 학교도 지나고, 자라전, 정장리를 다 지나치는데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경운기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서는 경운기를 타든 달구지를 타든 리어카를 타든 다 상관없었다. 학교 가는 길에서 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친구들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가 결정한 일은 무조건 따라야만 했다. 경운기 뒤에 어머니와 우리 세 자매가 올라탔다. 덜덜거리는 경운기를 장시간 타야 해서 바닥에 수건을 넣은 자루를 깔고 앉았다. 경운기 난간이 등받이가 되었다. 어머니와 언니가 나란히 앉고 나와 동생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도랜말’을 지나가는데 남자애들이 말뚝으로 칼싸움 놀이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다보니 그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도랜말을 지나 신촌까지는 산과 밭뿐이라 아무렇지 않았다. 강골에 다다르니 대추가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전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애들하고 철망 안쪽으로 손을 쭉 뻗어 따 먹었는데 어찌나 달콤하던지. 대추가 맛있다는 걸 강골 밭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동생도 맛나 보이는 대추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경운기가 힘이 딸리는지 털털 속도가 느려졌다. 반고개째 까지는 무사히 가야 할 텐데 걱정되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고개를 무사히 잘 넘어갔다. 이제 내리막길이라 경운기도 한숨 놓고 달릴 수 있었다. 신촌을 지나는데 민희 언니네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슬쩍 보니 내 친구들은 없는 것 같았다. 드디어 학교 앞 아스팔트를 지났다. 다행히 아는 애들과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복병을 만났다. 느린 경운기가 도로에 진입하자 달리던 차들이 우리를 추월해 갔다. 그때마다 차 안의 사람들과 자꾸 눈이 마주쳤다. 사방이 뻥 뚫린 우리는 숨을 곳이 없었다. 괜스레 부끄러우면서도 웃겼다. 누가 먼저였는지 계속 웃음이 나왔다. 웃는 모습을 들키면 왠지 지는 것 같아서 억지로 참으려니 오히려 더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는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으셨지만, 이유는 없었다. 그냥 웃긴 거였다. 양계장에 도착할 때까지 차가 나타나면 안 웃는 척, 그러다 바로 터져버리는 웃음 때문에 정말 배가 다 아팠다.
드디어 양계장에 도착했다. 웃음을 참지 않아도 되어서 산처럼 쌓여있는 닭똥이 오히려 반가웠다. 닭똥은 쌀겨랑 재를 뿌려 건조해둬서 냄새도 많이 나지 않았다. 마치 흙 같았다. 삽으로 경운기에 퍼 올렸다. 양계장에 지붕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덥지도 않았다. 고추 따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허리가 살짝 아팠지만 덥지 않으니 견딜만했다.
경운기 난간까지 닭똥이 차면 아버지께서 치킨을 시켜 주신다고 했다. 우리 동네 ‘목소리’에서라면 어림없을 일이지만 마전에는 치킨집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치킨은 어떤 맛일까 상상하다 보니 벌써 입에 침이 고였다. 삽질에 더 힘이 솟아났다. 닭똥을 다 실었을 무렵 언제 시킨 것인지 치킨이 도착했다. 고맙게도 바닥에 펼 신문까지 따라와 있었다.
그때까지 닭이라고는 백숙과 닭볶음탕밖에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미 냄새만으로도 어떤 맛일지 알 것 같았다. 치킨은 두 상자로 나뉘어 왔다. 아버지가 앉자마자 우리도 치킨을 집어 들었다. 한입 베어문 순간 바삭함에 놀랐다. 뼈는 조심해서 먹으라는 어머니 말씀과는 달리 뼈까지 바삭했다. 닭을 튀기면 뼈까지 바삭해지는 모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이 보였다. 뼈 그런 게 남았었던가?
일도 끝났고 맛난 것도 먹었고 만족스러웠다. 집에 갈 일만 남았다. 갈 때는 닭똥 위에 앉아 가야 해서 올 때보다 더 불편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불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아는 친구를 만날 일도 없어 보였다. 생전 처음 맛본 후라이드 치킨 맛의 감동만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어스름한 어둠이 마을에 내릴 무렵 경운기가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동생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