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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May 22. 2024

비 오는 날

  우산 전쟁으로 시작했던 비 오는 아침. 우리는 풀잎에 다다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젖은 시멘트 길을 자박자박 걸어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많았다. 그 위로 실뱀이 스르륵 떠다녔다. 멈춰 서서 그걸 툭툭 건드려보았다. 실뱀은 물웅덩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빙빙 맴돌았다.


  비 오는 날은 길에서 물비린내가  많이 났다. 가다 보면 죽은 개구리들이 널려있었다. 유독 연둣빛 청개구리가 많았다. 통통해진 지렁이는 반짝 윤내며 꿈틀댔다. 그걸 잡아 늘리며 노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시골 아이답지 않게 벌레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 내리는 풍경과 함께 마음도 촉촉하게 젖어들 때쯤이면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에서도 창밖의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았다.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멀리 가지 못하고 교실 안에 머물러 있는 듯했지만 멍멍한 그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비가 멈춘 하교시간에는 우산을 지팡이 삼아 바닥을 콕콕 짚으며 걸어갔다. 우산 손잡이로 가방끈을 잡아당기는 장난꾸러기도 있었다.


  신촌 길가 밭 토란잎에는 물방울이 맺혔다. 토란잎 양쪽 가를 두 손으로 잡고 한쪽씩 기울이며 작은 물방울을 모아 큰 물방울로 만들었다. 한참 애써 모은 물방울을 양손의 반동으로 화살 쏘듯 앞으로 툭 튕겨버렸다. 왠지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런 큰 물방울을 여러 개 만들며 논 후에야 다시 집으로 향했다.


  빗물이 신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을 해도 어느샌가 늘 양말까지 젖어들었다. 그러면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뛰어다녔다. 시멘트 웅덩이는 옷을 크게 더럽히지 않았지만 길가 쪽 진흙이 시멘트 길을 침범해서 가다 보면 진흙 덩어리들이 바지 밑단에 턱턱 묻기도 했다. 이미 버린 옷이었는데 진흙이  묻는 건 싫어 고인 빗물에 바지 밑단을 빨다 가기도 했다.


  예상 못 한  비가 내리는 하굣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맞으며 집에 갔다. 어차피 다 젖을 걸 알면서도 교과서만은 지켜보겠다고 가방을 앞으로 메고 양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다 어느 쯤에선 포기하고 가방을 등에 메고 뛰어다니며 놀았다. 젖은 신발이 바닥에 밀착되며 내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비가 많이 와 도랑물이 불면 빨래터로 갔다. 빨래터 아래 큰 바위가 반은 잠겼다.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세차게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몇 초도 안 돼 바위가 물살에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배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이 많을수록 바위 배는 더욱 빠르게 느껴져 어떤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면 고개를 들어 앞산을 바라보았다. 앞산은 비에 젖어 더욱 싱그러운 초록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다음 날 신고 갈 젖은 신발이 걱정되어 마루 위에 수건을 깔고 신발을 벽에 기대  말렸다. 선풍기 바람을 고정해 놓았다가 신발 서너 개가 더 늘어나면 회전으로 말렸다. 들인 정성에 비해 다음 날 아침 바싹 마른 신발을 신은 기억은 없었다.

  

  가방을 열어보면 책 사방 모서리가 젖어있었다. 나중에 쭈글쭈글해질 걸 알면서도 무거운 걸 찾아 올려두곤 했다. 축축한 신발을 신고, 얼룩진 책을 들고 등교하게 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산뜻해진 공기와 싹 쓸어가 버려 깨끗해진 도랑 바닥을 보는 것도 상쾌했다. 하늘도 더 빛나 보였다.  그때가 아련하게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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