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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Aug 21. 2024

어머니의 꽃밭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다. 장 보러 갈 때마다 조금씩 사 온 꽃씨를 집안 곳곳에 뿌리곤 하셨다. 어떤 날은 이웃에게 얻어와 심기도 했다. 장독대 아래 빈 땅이 아쉽다며 그 둘레를 돌아가며 키 작은 채송화밭을 만드셨다. 할머니가 쓸데없는 걸 심어놨다며 호미로 채송화를 박박 긁어내시곤 했다. 그러나 어느 틈에 심은 건지 채송화는 다시 그 자리에 낮게 피어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내가 봐도 어머니를 참 미워하셨다. 아들 못 낳는 며느리라고 동네방네 흉을 보고 다니셨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며느리가 좀 버거우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명절이 다가오면 장롱 속에 감춰두었던 빨랫감을 동네 한복판 도랑의 빨래터에  들고 나오셨다. 그걸 냅다 쏟아붓고는 며느리가 빨래를 안 해준다며 욕지거리를 한바탕 하셨다. 다리에서 놀다가 할머니의 험담 소리가 들리면 내가 죄를 지은 양 기가 죽어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아무렇지 않게 동네를 활보하다니는 셋째 동생이 늘 부러웠다. 매정한 할머니가 우리 집을 떠나 큰집으로 들어가 사시면서부터는 채송화도 제자리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우리 집 대문 앞에는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큰 돌이 있었다. 나중에 그 돌을 팔아 대문을 샀다고 했으니 흔한 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돌 앞에 봉숭아꽃과 맨드라미가 피어있었다. 금새 시들해져 버리는 봉숭아꽃은 손톱에 물들일 때 빼고는 우리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맨드라미는 닭 볏처럼 생긴 게 너무 투박해 보여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미 떼가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걸 볼 때면 더 못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마당에 들어서면 대문 오른쪽으로 자두나무가 있었다. 자두나무 뒤로는 죽단화가 틈새 없이 빼곡해서 담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의 소꿉놀이 주인공은 자두나무와 죽단화 사이에 흐드러지게 핀 분꽃이었다. 꽃을 따고 꽃술을 길게 빼내 귀에 걸어 귀걸이라며 놀았다. 분꽃은 뒤꼍의 샘 주변에도 많아서 귀걸이만큼은 내내 풍족하게 만들 수 있었다. 분꽃 앞에는 ‘사연 많은’ 채송화도 한창이었다. 작고 오동통한 채송화 줄기와 오묘한 색깔이  신비로워 보였다.


  뒤꼍 샘 뒤로는 골담초가 울타리처럼 서 있었다. 가시가 뾰족해서 숨바꼭질할 때마다 우리는 늘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장독대 주변에는 할머니의 호미질을 이겨낸 채송화와 함께 족두리 꽃과 맨드라미가 피어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장독대 모서리 쪽에 작약을 심으셨다. 다른 꽃들과 달리 커다란 꽃송이가 왠지 낯설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나중에 작약은 대문 앞으로도 진출했다. 그 옆에 빨간 ‘사루비아’도 자리 잡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뒤꼍에 코스모스도 가득 피어있었으니 우리 집은 그야말로 꽃 천지였다.


   어느 봄날 동네 도서관 주차장에서 눈에 익은 노란 꽃이 보였다. 죽단화였다. 그렇게 자주 오갔으면서 죽단화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노란 겹꽃이 너무 예뻐서 서러웠다. 하하 호호 분꽃 귀걸이를 나풀거리며 활짝 웃는 작은 여자애들이 가슴 아리게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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