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과 가능 사이의 간극에서
과학사와 철학사에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언제나 불가능에 도전한 이들이었다. 갈릴레이는 교회의 권위에 맞서 지동설을 옹호했고, 다윈은 인류 기원의 신화를 흔들었으며 튜링은 수학적 추상 속에서 컴퓨터의 가능성을 열었다. 당시 그들의 도전은 시대가 보기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역사는 그들을 “혁신의 주인공”으로 기념한다.
반대로 오늘날의 현실은 다르다. 자본과 권위는 대체로 가능해 보이는 분야에 집중된다. 인공지능, 바이오, 반도체, 우주 산업 같은 영역은 이미 과학적 원리가 검증된 “현실적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투자는 위험을 싫어하기 때문에, 당장 실패 가능성이 큰 ‘불가능한 꿈’에는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권위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당연하게 인정할 수 있는 분야에서 더 쉽게 축적된다. 즉, 현실은 불가능보다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지만 곧 가능할 듯한 영역을 소비한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역사는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교훈을 남긴다. 그러나 현실은 “가능한 것만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역사는 실패조차 혁신의 흔적으로 기억하지만, 현실은 실패를 곧장 손실로 처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역사의 교훈과 현실의 질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두 질서가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역사의 교훈을 전적으로 좇으면 현재는 버거워지고, 현실의 질서만 따르면 장기적으로 공허해진다. 따라서 필요한 건 불가능을 향한 긴 시선과, 가능을 발판 삼는 짧은 시선의 병행이다. 불가능은 길을 열고, 가능은 오늘을 지탱한다. 두 가지를 함께 짊어질 때에만, 우리는 현재와 역사를 동시에 살아낼 수 있다.
#생각번호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