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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01. 2021

기적

아빠와 딸 사이.


그것은 모든 순간이 기적이 되는 관계이다.  


"아빠,  기적이 뭐야?"

 올해 다섯 살이 되어 말문이 터진 딸아이가 눈부신 6월의 숲을 걷다가 해맑은 얼굴로 아빠에게 물었다.


"그건... 신기한 일이라는 뜻이야."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하듯이 딸아이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말했다.


"그럼..." 한참을 생각하더니, "동생이 기어간 것도 기적이야?"

6개월 된 동생이 며칠 전에 처음으로 기어 다닌 게 생각난 모양이었다.


아빠는 딸에게 '그것뿐만이 아니란다. 네가 처음 태어난 그 순간, 첫걸음마를 떼다 넘어져 울어버린 날, 하얀 토끼 이빨 두 개가 자랐다고 내게 자랑하던 날,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든 순간이 바로 내게는 기적이란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알아듣기에는 아이가 너무 작았기에 그냥 꼭 안아주었다.


(25년 후)......


"3.2kg의 건강한 사내아입니다."

수술실의 간호사가 갓 태어난 핏덩어리 아기를 엄마에게 안겨주며 말했다.

 그녀는 해산의 고통도 잊은 채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아기를 끌어안았다. "응애~"하고 힘차게 우는, 그러나 눈도 아직 안 떠진 아기를 처음으로 내려다보자 순간, 오래전 아빠가 자신에게 '기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가르쳐주었던 그 6월 여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아빠, 나 이제야 그 말뜻을 정말 이해하게 됐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야.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진짜 기적이 된다는 거...  고마워. 그걸 내게 가르쳐줘서.'라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 아빠의 그 미소를 떠올렸다.


 때로는 삶이 힘들고, 견디기 어렵고, 이해하기 조차 싫지만.

그래도 지금 살아있는,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그 누군가에겐 기적이 될 수 있다. 신이 부여하신 생명이란 존재 그 자체가 기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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