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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Feb 02. 2024

나는 말 안 듣는 주재원 와이프가 되었다.

내향형의 살기 위한 선택

새로운 곳에서 한참 적응하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남편의 중국 주재원 발령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선택이 아니라, 꼭 가야만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발령 확인 날짜가 확정되기까지는 미정의 상태에서 몇 달을 마음 졸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몇 년만 기다리면 미국 주재원의 기회가 있다고 들어서 혹시나 중국 주재원 발령 소식이 취소될 가능성을 기대하기도 했다. 


첫 가족 해외살이로 정해진 가본 적 없는 중국, 또 사회주의라는 면이 우리가 과연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주재원 생활에 대해서 깊숙히 들은 이야기도 없었고, 단순하게 우리 가족의 터전이 중국으로 옮겨진다는 점과 아이의 학교를 국제학교로 전학시켜야한다는 점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학교지원 방법 조차 몰랐던 시절이라, 당시에 주변 엄마들 중에 선진국에서 주재 생활을 하고 돌아온 분들이 있어서 슬쩍 물어봤지만, "그냥 뭐 하면 되죠."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듣고, 내 성격상 더 묻지 않았다. 유학원에도 문의하고, 혼자 검색창에 도시와 International School을 검색하며, 각종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정보를 모으고, 학교 입학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물론 처음하는 해외이사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왠걸, 국제학교 입학 준비와 해외 이사는 조금 익숙해지면 시간만 걸릴 뿐 절차대로 진행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지금껏 한국에서 경험했던 나의 아줌마 삶과는 또 다른 세상의 인간관계 속의 주재원 사회였다. 한국에서도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마주치지만, 그때는 그냥 피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나의 선택은 불가피했고, 무엇보다 내향적이고 주관적인 나의 성향에 마음대로 살기가 쉽지 않았다. 즉, 무리에서 튀면 안되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쉽게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어느 한 동네에 나와 연관된 한국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살고 있다. 회사 사람들, 또 주변 회사 사람들, 그리고 아이의 학교 엄마들의 가족들이 모여 살고, 그 주변의 몇 개 안 되는 마트, 병원, 식당, 학원 등의 커뮤니티만 이용한다.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고, 새로운 가족이 오고 갈 때마다 서로 만남을 갖고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한다. 혼자 의견을 달리하면, 수군대는 상황을 감수해야하고, 눈 밖에 나기 쉽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그 좁은 곳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머지 사회는 다 말 안 통하는 외계 사회라고 생각하면 쉽다.



주재원 와이프라고 하면 흔히들 상상하는 모습들이 있다. 회사에서 각종 혜택을 받으며 현지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산다고 말이다. 회사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른 집, 자동차, 교육비, 의료비 등의 지원을 받으니, 한국에서 일반 직장 생활을 하던 평범한 입장에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삶을 사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특히 중국은 마트, 한인 반찬 등의 배달 문화가 잘 되어 있어서 요리하기 싫으면 손쉽게 주문할 수도 있고, 인건비가 저렴하여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인 아이(Ayi, 阿姨)를 두어 남의 손으로 살림 도움을 받으니 손에 물을 좀 덜 묻힐 수 있다. 남는 시간에 자기 관리를 위한 한국보다 저렴한 마사지와 피부 관리나 손발톱 관리를 받고, 중국어나 영어 수업도 듣고, 일상을 여행하듯 해외 여행같은 현지 생활을 누릴 수 있어서 귀국 시에 여자들이 오히려 떠나기 싫은 나라라고 한다.


아이들 또한 국제학교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조기 유학처럼 배울 수 있고, 주재원이 끝날 무렵에는 능력에 따라서 영어 수준도 일취 월장해서 갈 수도 있다.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국제적인 무대의 경험을 할 수도 있고, 견문이 넓어지는 기회를 맛보기도 한다. 물론 귀국시의 한국 공부 고민은 덤으로 따라오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나는 안타깝게도 '말 안 듣는 주재원 와이프'의 길을 가게 되었다. 성격상 누구와 싸움을 일으켜서 등을 진다거나, 모진 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아닌, 나 혼자 서서히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 특유의 나이에  따른 갑갑한 서열 문화와 단체 문화, 그리고 좁은 해외 현지에서의 시기, 질투 등을 겪으며 어느새 그 틈에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더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기하게 한국에서는 절대 볼 일도 없던 누구 부장님, 실장님과 그 이하 직급의 와이프들의 사적인 모임 등 남편의 직접 타이틀에 따라 주재원 와이프들 사이에서도 질서가 잡히는 신종 문화와 동네 및 학교의 한국 엄마들 모임에서도 은근한 텃세와 신경전이 단순하면서도 내향적인 내게는 쉽지 않은 문화였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인생은 원래 어딜가든 만나는 나와는 결이 다른 몇 사람들에 의해 꼬이기 시작한다.


요즘 주재원 문화는 예전보다는 자기 할 말을 많이 한다고 들었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와 같이 힘들었을 내향적인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는 가족들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이곳은 다들 뜨내기 들이라 엄마와 아이만 뚝심을 지킨다면 나의 갈 길을 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래전 나의 기억들을 되살려,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주재원 와이프의 삶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한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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