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llie 몰리 Feb 16. 2024

모르는 부장님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다.

xx 사모님 귀국하시는데 밥 먹어요.

드디어 첫 집을 한인타운에 구하고 이사를 했다. 집은 구하고 몸은 편했지만,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으니, 짐이 올 때까지 또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보낸 해외 이삿짐이 오려면 아직도 최소한 보름은 있어야 했고, 통관을 하려면 '거류증'이라는 서류가 필요해서, 이걸 도와줄 회사분을 찾느라 또 애를 먹었다. 급한 대로 이불, 패드와 소소한 살림살이를 주변 마트에서 구입하고, 다행히 그곳에서 알게 된 한국분이 우리 사정을 알고 감사하게 소소한 짐들을 빌려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청소하는 이모님을 처음 만났다.

중국집은 문을 열면 전실이 없고, 바로 집의 거실이다. 신발장은 한국보다 작지만, 아파트 자체의 층고는 높아서 집이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조선족 부동산의 서비스로 첫날 청소하는 아이(가정부 이모, 阿姨)를 구해주신다고 하셨다. 굳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커튼이라도 편하게 빨라고 청소하는 이모를 보내주셨다. 그분이 바닥과 화장실, 주방을 나름 청소하고 커튼을 다 떼서 세탁기로 돌려주고 가셨는데, 그날 나는 아이와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번역기나 위챗을 통해서 요구사항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이의 청소 방식이 조금 특이했다. 걸레 하나를 이용해서 온 바닥을 닦고, 그걸로 화장실 바닥과 세면대도 닦고, 주방 바닥도 닦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물론 아이가 모든 그런 성향은 아니겠지만, 내 집은 내가 청소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또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듯한 어른이 내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니,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도 옆에서 아이와 같이 일을 하고, 그 느낌이 좀 부담스러웠다.



드디어 한국에서 이삿짐이 도착하고, 그날 역시 남편은 회사에, 아이는 학교에, 집에는 나뿐이었고, 혼자 중국어만 구사하는 작업자 아저씨들과 이삿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선족이 한 분 오실 거라고 했는데 직접 오지는 않고 전화로만 통화할 수가 있어서, 한국에서 80박스 정도 되는 짐을 일일이 체크하며, 하자 체크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가운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난리법석이었던 이사짐의 일부, Photo by Mollie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삿짐을 받고 있던 중에 갑자기 내 전화벨이 울렸다. 아까 그 조선족 이사업체 아저씨인 줄 알고, 이사 난리통에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는 다름 아닌 여자 목소리였다.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없는데, 누구인지 궁금했다. 서로 누구인지 모르니, 그분도 조심스럽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xx 와이프시죠? 저 xx 부장 와이프예요. 중국 오신다고 들었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 지금 이사 중이에요.

오늘이 이사 세요? 저희들이 가서 도와 드릴걸 그랬어요.

아니에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가끔 모여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돕고 하거든요. 다음 주에 xx 사모님이 한국 귀국하셔서 밥을 먹는데, 오셨으면 해서요.


난감했다. 많이. 전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또 얼굴도 모르는 분의 갑작스러운 직접적인 전화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회사 주재원 와이프 모임에 대해서 들은 게 없었고, 나는 정말 해맑게 중국살이에만 초점을 두고 이곳에 왔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김장콜인가? 부르면 달려가서 사모님 댁을 위해서 막내인 나는 집에서도 안 하고, 엄마 집에서도 한 적 없는 김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 혼자 상상했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좋고 싫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 생활의 당연함에 젖어들어서, 계속 이어져오던 자연스러운 관계였을 수도 있어서, 내가 불편할 거란 의심도 안 했을 수도 있다. 또, 그분 역시 누군가 시켜서 전화를 했거나, 어쩌면 그분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새 얼굴이 반가워서 모임에 초대했을 수도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 달 동안 난민 호텔살이를 하다가, 이제 집을 구했고, 2주를 빈집에서 살다가, 지금 이사 중이었다. 보통 이삿짐도 정리하려면 1달은 족히 걸리는데, 해외 이삿짐은 더 심각했다. 내 옷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꾸 만남을 부추겼다. 당시에 매일 중국어 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아이는 국제학교에 막 들어가서 넘쳐나는 이메일에, 학교 갈 일도 많고,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다 모험이었다.


당시 나의 스케줄은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오전에는 중국어 학원을 가고, 집에 와서 점심밥 챙겨 먹고, 청소하고, 장보고, 저녁 준비하면 아이가 3시가 좀 넘으면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혼자 택시 타는 법도 잘 몰라서 헤매던 때였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얬고, 이사 중인 중국인 작업자들은 계속 불러대고... 그냥 솔직히 내 마음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이사 중이고요. 평일에는 매일 중국어 학원 가고, 아이가 이제 막 학교에 가서 저도 잘 모르고 적응 중이라서 여유가 안될 것 같아요.

아, 다들 그 시기 거쳤어요. 한번 오시면 도움 될 거예요.

아니, 전 괜찮아요. 전화 주셔서 감사한데, 저는 원래도 모임을 잘 안 나가는 사람이라,,,

저희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이하 생략)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남편한테 전화해서 다짜고짜 이야기를 했다. 이런 전화가 왔는데, xx 부장의 와이프라고 하는데 xx 부장을 당신은 아느냐고. 더 황당한 건, 남편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팀도 아니고, 그냥 같은 회사 주재원으로 나와 있으면 다들 모여서 하나의 주재원 와이프 모임을 만들어서 만남을 갖는 것 같았다.



불편한 전화 통화를 마치고, 이사 작업자들과 다시 이삿짐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위챗에 모르는 사람 몇 명이 친구 신청을 했고, 나는 그때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고, 나름의 충분한 이유를 진실되게 다 이야기를 했음에도 친구 추가가 신청되었다. 이사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내가 이 사람들을 추가하는 순간, 나는 그 모임에 그냥 간다고 수락하는 의미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어져서 또 계속 회피하기 위한 불편한 대답을 하고, 핑곗거리를 찾아야 할 혼자만의 심리전이 예상되어서 남편한테 이야기했다.

"아, 전화가 왔어? 회사에서 나보고 당신 전화번호 묻길래, 내가 회사에다 우리 아내는 그런 거 안 좋아한다고 안 알려줬는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지? 나가지 마. 안 가도 돼."


남편도 그런 사사로운 모임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의 회사 생활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고맙게 선을 그어주었다. 그런데, 내가 위챗에서 친구 수락을 안 하자, 이번에는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너무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현재 내가 모르는 나라에 와서, 혼자 이사하는 것도 힘든데, 왜 가만히 있는 나한테 자꾸 모임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재원 와이프 모임에는 거절 의사를 하면 안 되는 규율이라도 있는 건지. 왜 나도 모르는, 남편도 모르는 나이 많으신 와이프('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쓰고 싶지 않다.)가 귀국을 하는데, 내가 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나는 세대를 일찍 타고 태어난 40대 MZ 세대 같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한다. 나는 그렇게 계속 거절을 했고, 그분들 역시 한 해 한 해 지나가며 순서대로 들어가셨다. 나중에 남편을 통해서 예전에 있던 그분들 다 한국 들어가셨다고 듣게 되었다.


나의 이사에 도움이 되고, 나의 첫 중국살이에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나의 모든 상황을 알고도 만남을 원했던 회사 주재원 와이프들이 아니라, 남편이 직접 아는 직장 동료, 그의 와이프, 근처에 사는 한국 엄마, 또 아이의 학교 친구 엄마 등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남편의 회사 생활을 지켜보면, 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불이익되는 것도 없었고, 남편 역시 그런 모임을 원치 않던 사람이라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오자마자 말로만 듣던 주재원 와이프 모임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인간관계라는 게 어설프게 인사하고 얕게 사람을 알게 되었다가, 성향과 결이 맞지 않아서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면, 오히려 모르니만 못한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사람에 따라서 누구와도 잘 지내고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외향형도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데 느낌과 나와 맞는지가 중요하고 사람을 만나서 떠들다 보면 쉽사리 방전되어서, 집에서 혼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형도 있다. 더군다나 나의 개인적인 연결고리로 인한 사람들도 아니고, 애매모호하게 사람들을 소개받게 될 경우 이 좁은 해외에서 자칫하면 피할 수도 없는 아주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내게 주어진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면 내 기본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없는 회사 아내들의 모임은 누구를 위한 모임일까.


사진 출처 :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