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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Mar 01. 2024

하루 두 번, 그 자리의 그녀들

스쿨버스 픽업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

한국에서 좁은 인간관계를 즐기던 나는 주재원 와이프로서의 얕고도 넓은 인간관계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 살 때는 동네에서 교류를 하는 엄마와 얼굴만 아는 엄마 정도로만 나뉘어서, 안면만 있는 경우에는 가볍게 인사만 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의 개념은 한국에서의 이웃보다는 얕은 듯 깊고,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연차별로 나뉘는 이웃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서로 전혀 몰랐던 사람들, 또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인다.


매일 같이 하루에 두 번, 그 자리의 그녀들은 모이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경우에, 보통 초등학생까지는 아이가 스쿨버스에서 내릴 때 엄마나 보호자가 데리러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단지에 같은 학교에 보내는 엄마들끼리 하차 시간에 맞추어 옹기종기 그룹을 이루어 등하교 시간이 되면 각각의 장소에 모여 있게 된다. 처음 온 사람들과 기존의 엄마들과의 인사와 통성명이 시작되고, 서로 동네 소식도 주고받고, 학원이나 과외도 소개받는 등 엄마들의 또 다른 정보 교류의 장소이기도 하다. 아침에는 지각하는 아이가 있으면 얼른 전화해서 버스가 떠나려고 한다며 연락을 주는 정이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또다시 시작되는 같은 질문들을 받고, 기계처럼 대답을 하며, 이제부터는 매일같이 피할 수 없는 엄마들과의 어색한 모임이 또 시작되었다. 각자 온 시기가 다르고, 아이들의 학년도 다르고, 성향과 취향이 다르다 보니 여러 개의 소그룹으로 친한 모임들이 보인다. 새로 온 사람들은 먼저 온 사람들의 작은 한 마디에서 정보들을 얻기도 하지만, 가끔 그 정보에 대한 값을 치른다고 느껴지는 불편한 텃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힘들게 얻은 정보를 우리니까 준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거나, 그들이 주는 정보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 가끔 되묻기도 한다. 학교에 대해서도 이렇게 운영이 된다며 약간 가르침으로 느껴지는 항목들도 있었다.


매일 같이 자신의 아이 픽업을 위해 나온 주재원 와이프들이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은 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 공유이다. 짝퉁이 판치는 나라인 중국의 특성상, 자신이 아는 짝퉁 샵을 소개해주거나, 방문해 온 곳에서 사 온 짝퉁 가방, 지갑 등을 보여주고, 상대가 하고 있으면 구입처나 위챗 연락처를 묻기도 한다. 또 일하는 아줌마인 Ayi를 소개하고 소개받기도 한다. 사이가 좋을 때는 자신의 Ayi를 소개해주기도 하지만, 점점 파가 갈리면 끼리끼리 몰래 소개해주기도 하고, 원하는 시간이 겹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나처럼 일하는 이모님을 쓰지 않으면, 왜 쓰지 않는지를 매번 챙겨 물어서 난감할 때도 있다.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대화의 장이 되지만, 골프에도 관심 없는 내 입장에서는 골프장 이야기, 골프옷 추천 브랜드, 구입처, 마사지 등에 대한 정보는 한 귀로 흘려지나 갈 뿐이다. 가끔 시간을 지인과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 도착해서 아이를 받아달라는 연락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골프를 치다가 집에 오는 시간에 늦어서 헐레벌떡 그 옷차림으로 골프백과 함께 오는 진귀한 모습도 보인다.


학교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학교 일정 혹은 컴플레인, 이러다가 점점 깊어지면 하나씩 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꺼내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거나 누구인지 모를 때, 듣고 싶지 않을 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벽에 붙어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할 때가 있다. 나처럼 내향적인 주재원 와이프들은 살짝 뒤로 물러서서 이야기를 듣거나, 아예 버스 도착 시간에 근접해서 최대한 늦게 나가서 그 시간을 피해 보기도 한다.


스쿨버스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타는데, 큰 아이들은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은 게임을 하기도 하고, 언제나 시끌벅적해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까지 등하교하며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이 되고 의도치 않게 엄한 곳에 에너지를 빼는 힘든 주재원 와이프 생활을 하기도 하는 말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속의 현실이다.



또 이곳 국제학교에서는 아이의 영어 실력이 엄마의 간판인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바로 국제학교로 올 경우, 학교 측 판단에 따라 아이가 영어 수업에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면, 일부의 수업 대신에 추가 비용을 내고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수업을 듣는데, 아이가 EAL 수업을 듣게 되면 빨리 그 수업을 졸업하는 게 또 엄마들의 새로운 목표가 된다. 그래서 아이가 EAL 수업을 듣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하고, 만일 듣지 않는다면 순수하게 듣는 엄마들도 있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는 "한국에서 영어 좀 시키셨나 봐요."라는 말과 은근한 뒤에서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를 잘 오픈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지내던 어느 날, 엄마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갑자기 "누구 엄마 어때요? 친해 보이던데."라며 의중을 떠 묻는 여자들의 관계는 단순한 내게는 너무 복잡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포장된 셈이 가득한 대화가 보이기도 한다.


또 같은 곳에 산다는 이유로 학교를 갈 때 학년이 다르거나 친분이 별로 없는 사이끼리, 분할페이를 위해서 위챗으로 단톡방을 만들어서 택시를 같이 타고 갈 때도 있다. 각자의 일정이 다른데, 집에 갈 때 또 상대를 기다려야 하는지, 먼저 가도 되는지 연락을 해야 하는 이런 잔신경을 쓰는 게 딱 질색이라, 돈을 더 줘도 시간과 사람에 구애받지 않고, 내 스케줄대로 다니는 게 편했지만, 이런 행동들이 모이면 자칫 '우리와는 다른 사람, 좀 튀는 사람'으로 낙인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원하는 수업이 있어도 엄마가 픽업할 역량이 안 되면, 아이와 그 수업을 들을지 말지를 상의하고 신청해야 하는데, 다 시키고 싶은 욕심으로 은근슬쩍 그걸 부탁하는 사람도 있고, 가끔 원치 않는 공동 육아에 끼지 않으면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점점 스쿨버스 담당 Ayi와 얼굴이 익을수록 최대한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나가거나, 조금 늦게 나가거나, 아이가 집에 다 오기 직전에 중간에서 만나거나, 아이가 혼자 올 때도 있었다. 내향적인 주재원 와이프들은 하나같이 공감하고 행동했던 부분이다. 하나였던 그룹의 모양이 점점 여러 모임으로 말없는 불편한 관계로 나뉘어,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무의미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피할 수 없으니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한국이 아닌데 한국보다 더 한국스러운 이 느낌은 뭘까.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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