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한국 학년 대표의 후보였다.
한국에서도 반마다 반대표가 존재한다. 학기 초에 원하는 사람이 반대표를 지원하거나, 지원자가 없으면 담임 선생님의 요청에 의해서 반대표를 맡는 경우를 보았다. 학기마다 1~2번 정도 반모임을 주도하고, 학교 행사가 있을 시에 모임과 일정을 챙긴다.
이곳에서 어쩌다가 반 엄마들을 알게 되었고, 알음알음 단톡방에 초대가 되어 결국 아이 학년의 전체 엄마, 그리고 전체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학 초에 어느 한 식당에서 학년 모임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고, 한국에서도 반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던 나는 전체 학년 모임 소식을 듣고 많이 망설였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왜 모이는 것인지, 몇 명 정도의 엄마들이 있는 건지 등 심란한 마음을 안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아시아권인 만큼 한국인들의 수는 꽤 많았고, 그곳에서 서로의 반을 공유하며 반끼리 또 소그룹이 생기는 모습이었다. 이어 대표인듯한 엄마 한 분이 인사를 하고, 다들 돌아가며 일어서서 자기소개를 한 뒤, 모임의 성격과 하는 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사실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서 누가 누구인지 잘 들어오지도 않고, 어색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모르던 시간들로 기억한다.
그날 가장 놀랐던 사실은 이곳에 있는 국제학교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학교에는 한국인회라는 이름으로 한국인들의 모임이 있다는 점이었다. 각 학년 대표 위에 또 조직이 존재하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시나 회의 시에 한국인을 대표해서 건의하는 엄마들의 역할도 필요했다. 한국으로 치면 운영위원쯤 되는 역할 같았다. 오래돼서 직함이 기억이 안 나지만, 나름 체계적인 조직 구성원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엄마들은 그 학년 대표의 후보라는 점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싫어도 해야 한다는 점과 속해야 한다는 게 나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학년 대표 하기 싫은데요.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학년 대표를 뽑는 방식은 뽑기 방식과, 연차별로 오래된 사람이 순서대로 학년 대표를 맡아서 1년간 그 학년을 책임진다.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생길 공석을 위해 후임자까지 뽑아둔다. 학년 대표는 새로 온 사람을 챙기고, 귀국하는 사람들을 위한 송별회 자리도 마련하고, 매주 학교에서 오는 안내 메일 들을 학년 톡에 번역해서 올리거나, 학교에서 시시때때로 오는 안내들을 계속 공지해 주는 역할, PTA 회의에서 나온 안건들에 대한 의견 공유, 인터내셔널 데이 준비를 한다. 또 대표들만의 모임도 있다고 들었다.
또 1년에 한 번 회비를 걷기도 하는 등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이게 과연 정말 필요한 일인지, 또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누군가 대표를 만들어서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대신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이미 메일에 필드 트립에 관한 안내가 왔는데, 그걸 한 번 더 한국어로 챙겨주는 주는 게, 반대로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 꼬박꼬박 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한두 번 학교 메일이 오지 않아서 학교 측에 연락해서 받기도 했고, 외국인들이 포함되어 있는 어느 전체 카톡 방에서 나와 비슷한 엄마들이 질문을 하기도 하고, 나 또한 그곳에 문의를 한 적도 있다. 결국 국제학교 콘셉트에 맞추어 외국 엄마들과의 단톡방이 존재하지만, 편의상 한국인 단톡방이 또 존재하니 중복이 되었다. 외국인의 단톡방은 그냥 학교 학부모 소속의 일원으로 정보 공유 차원에서 만들어진 자유로운 방이지만, 한국 단톡방은 모임을 갖고, 정해진 룰이 있고, 나 또 한 그 학년 대표의 후보자라는 보이지 않는 강제성이 달랐다.
그 뒤로 수차례 엄마들과 모임을 할 때마다 내향적이지만 소신이 있는 나는 반대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원하는 사람이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들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원치 않는 사람을 앉혀서 학년 대표 자리를 주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온 사람들도 꺼리는 입장이 많았지만, 대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정말 피해야 할 일 많은 학년 대표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아이가 어릴 때 한 번 하자고 해서 먼저 손을 드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에서 전체적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안내가 오고, 그걸 놓칠 경우에는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환경에 따라서 주변을 통해서 뒤늦게 알 수도 있다. 외국어이지만 내용을 번역을 해서라도 알아야 하는 건 엄마의 역할이고, 시간은 더디지만 하나씩 해나가는 게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지금은 해외살이를 하는 중이고, 처음 국제학교를 다니는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해야 하고, 챙겨야 하는 건 이상일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학교에 대한 컴플레인이 있거나 소통이 필요할 경우에 이메일을 통해서 담당자한테 요청을 하면 그 통로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단, 문제는 영어이기에 그 문턱이 높을 뿐이다. 그러면 이 높은 문턱을 누군가 나서서 재능기부하는 게 아니라면, 그 문턱을 넘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일어나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편하게 지인들을 통해서 대신 이루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더디더라도 자신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해결을 하고, 그에 대한 에너지 소비도 많은 편이다.
국제학교인만큼 인터내셔널데이나 정말 부모의 도움으로 행사가 필요할 때는 그때만 일시적으로 자원봉사자를 구하면 될 듯해 보였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막상 학교에서 이벤트를 위한 부모의 참여를 원해도 심지어 단톡에서조차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국제학교의 이벤트가 궁금하기도 해서 기웃거리며 여러 봉사를 해본 뒤, 누구를 위한 학년 대표 모임을 만든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앞에서는 웃고 떠들면서, 뒤에서는 누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도 듣기 싫고, 앞뒤가 다른 모습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곳에 와서까지 받아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또 모임이 싫은데 참석자를 넘버링할 때 참여하고 싶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의 대답이 달릴 때까지 기다리는 그 불편함이란.
이 학년 모임 때문에 뒤에서 말이 많기도 하다. 대표를 뽑을 철이 되면, 누군가 갑자기 아프다는 말이 돌기도 하고, 갑자기 취업을 해서 재택으로 일한다는 소문도 돌고, 또 누구는 곧 귀국이라며 그 자리를 피했다가 결국은 귀국하지 않고 몇 년을 학교에 더 남아서 그게 또 엄마들 사이에서는 밉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당시에 궁금했다. 도대체 이 모임은 누가 만들었을까. 학교 측에서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나의 생각을 꺾을 마음은 없었고, 만일 원치 않는 나를 그 자리에 넣는다면, 나는 학교에 물어보고 싶었다. 이 모임은 공식적인 모임인지. 나는 입학원서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나중에 알게 된 나와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 걸 보고 한국보다 더 한 '한국인 모임'에 나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싶었다.
단톡에서도 새로 누군가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면 대부분 반갑게 맞아주지만, 또 그중에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거나, 어떤 질문에 내가 알고 있는 답변을 주어도 꼭 자신이 아는 사람이 답변을 했을 때 친분을 과시하며 입맛대로 골라서 답변을 하는 모습을 보고, 굳이 내가 이 단톡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친목과 공식적인 모임 그 사이의 애매모호한 모임이란 생각뿐이었다. 때로는 적응을 위한 단체 모임이 필요하고, 기존의 정보가 필요하면 그들끼리 모여서 모임을 갖고 정보 교류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마치 자동적으로 학년 대표의 후보자가 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지는 않는다.
텃새에 의한 누군가는 나의 소신을 밝히는 개미만한 목소리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냥 원래 예전부터 해오던 건데 따르면 되는 거지라고. 왜 그래야 하는지. 그중에는 "대표님!" 소리가 듣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내게는 마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낯간지러울 정도로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많이 불편한 단어이다. 학년 대표 외에 위의 조직에 있던 한 엄마가 나중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음 조직의 대표를 뽑는데 새로 뽑힌 사람이 어떻게 하냐고 어려워하고 고민하자, 농담 삼아서, "아랫것들 시켜." 웃고 넘기기에는 뉘앙스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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