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만 다녀오면 기가 빠지고 피곤하다.
코로나 이전의 국제학교는 엄마들이 학교를 갈 일이 참 많았다.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내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보호자로서 궁금하기도 하고, 아이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한국 학교와 다른 문화 체험이 재미있기도 해서 중국어 학원 외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나는 학교에서 초대를 하거나 갈 일이 있으면 꼬박꼬박 가곤 했다.
상담, 참관 수업은 물론이고, 학교 내에서의 스포츠 경기가 벌어지거나, 외부 국제학교와의 스포츠 경기가 있으면 사진도 찍어주고 응원도 하고 구경 삼아서 혼자 택시를 타고 학교를 들락날락했다. weekly 소식으로만 보고 듣는 상상의 학교를 직접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선생님들과 학교 직원들의 일상도 보고 아는 얼굴도 생긴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는 아이들이 있으면 인사도 해주고, 사진을 찍어서 엄마들한테 전달해주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학교 행사 후에 이어지는 한국 엄마들과의 2차 만남을 하기보다는, 그 행사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깔끔한 일정이 편해서 혼자 내 갈 길을 갔던 이유도 있다. 모르는 언어 환경 속에 노출되다 보면 일반적인 외출보다 몇 배의 기력 소진이 되곤 했다.
학교를 간다는 행동 자체가 혼자보다 이야기할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더 풍성한 대화거리도 생기고 알차긴 하지만, 매번 누군가에게 "이번에 학교 가세요?"라고 묻는 성격도 아니고,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간혹 택시비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친하지 않은데도 학교를 갈 건지 의견을 물으며 단톡방이 개설되기도 했고, 반복되는 학교 일정보다 개인 일정이 우선순위인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의 아이의 활동 사진을 부탁하거나 학교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가면 자료를 공유를 원하기도 했다. 이런 것쯤이야 한두 번은 선뜻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참 눈엣가시였던 점은 역시나 엄마들의 말이다. 인사인지, 질투 섞인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참 자주 오시네요? 늘 다 참여하시나요?" 내가 와서는 안 될 시간에 학교에 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엄마니까 당연히 학교에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꼭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내가 아이의 친한 외국 친구 엄마들과 짧은 영어로 소통을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면, "영어 잘하시나 봐요? 국제학교 어디 다니다 오셨어요?"라는 쓸데없는 관심이 참 얼른 그 자리를 뜨고 싶게 만들었다.
국제학교에 다녀보니,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 엄마들도 많지만, 우리와 같이 영어가 제2외국어인 엄마들도 많다. 하지만, 자신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뒤로 빼거나 숨지 않고 어떻게라도 참여하고, 대화하고, 서로 완벽한 소통을 하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 점이 나 역시 좋아 보였고 용기를 내서 다가가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나 역시도 누구에게 들려주기 부끄러운 정도의 영어 실력이지만, 이곳에 왔으니 늘 한국인 무리에서만 모여 다니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국제학교에서의 경험들이 쌓여 하나의 추억이 되는 느낌이었다. 소극적이고 내향적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에 당연한 일을 함에도 때로는 그게 입방아에 오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는 도마에 오를 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학년 모임을 해도 편한 사람이 있고, 반이 다르거나 아이와 성별이 다르면 접점이 없으니 서로 잘 모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그 모르는 사람까지 억지로 알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학교를 가면 늘 만났다는 반가움에 가볍게 또 무리가 생겨서 카페를 가기도 하고, 갑자기 밥 한 끼를 먹게 되기도 한다. 나도 개인적인 만남을 자주 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가끔은 이런 번개 모임을 통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여러 좋은 엄마들을 통해서 배울 점이 생기기도 한다. 대체적으로는 약간의 험담이 섞인 학교 이야기, 선생님들 이야기, 주변 엄마들 이야기, 학원 정보, 공부 방법, 특례 등 나는 크게 관심 없는 이야기들이 주가 되긴 한다.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 내향인은 이미 학교도 다녀왔고, 밥도 먹었고 눈이 감기고 대화를 듣느라고 기가 빠지고 몸이 피곤하다. 한 번은 친화력이 좋은 사람에 의해서 서로 잘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말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 집에 간 당황스러운 날이 있었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마침 어떤 엄마가 지나갔고, 친화력 갑이었던 엄마는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그 엄마의 집에서 차를 마시는 쪽으로 흘러가서 망설이다가 우르르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 동네도 아니고,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또 그 사람은 정말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집에 오는 걸 좋은 뜻으로 동의했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런 오지랖에 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었지만,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남의 집을 향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갔다.
낯선 집에서 낯선 사람이 주는 차를 마시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 기존에 아는 사람 옆에 찰싹 붙어서 대화에 호응만 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대화 내용도 나는 잘 모르는 아이이니 들리지도 않고, 공부 이야기, 학원은 뭘 다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주야장천 밖에서 있다가 아이의 스쿨버스 하원 시간에 맞춰 해산을 하니, 하교 버스 정류장으로 택시를 얼른 잡아 타서 아이를 받았고, 집에 와서 나는 녹초가 되었다.
아, 이게 뭐 하는 거지? 집에 와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그곳에서 "전 집에 갈래요. 싫어요."라고 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며, 서서히 그런 상황들이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대체적으로 모이기 좋아하고 타지살이에서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런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다를 위해 체력을 키워야 하나 고민도 했다가, 늘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 반격하지 못하는 결과가 속앓이가 된다는 사실에 점점 거리를 두기로 했다. 내가 학교에 혼자 가는 게 편한 이유였다. 학교를 눈치 없이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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