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그리고 정서적 스킨십
스킨십은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를 안아주고, 어루만져주고, 쓰다듬어 주고 하는 신체적 행동도 있지만, 넓게 보면 정서적으로 아이의 고민과 걱정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과,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지적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아이한테 스킨십을 하게 되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엄격한 잣대를 들이 되는 게 현실이다.
중국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게 된 국제학교에서 여러 나라의 친구 엄마들을 보며, 나는 아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많았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아이가 끝나면 아이를 꼭 안아주는 모습과, 아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엄마의 태도를 보며, 나는 잔소리만 많고, 지시만 많은 나무토막 같은 엄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진한 가족애와 조건 없는 사랑 표현도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또, 아이는 사랑을 받은 대로 그 사랑을 부모한테도 준다는 걸 아이가 크면서 느끼게 되었다. 스킨십은 습관이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가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자식과 부모의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부모도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가 집을 자주 비움으로서 결핍이 생기게 되었다.
남편이 출장을 가면 '자유부인'이라며 환호성을 지를 법도 하지만, 우리 집의 케이스는 조금 다르다. 아직도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가면 눈물을 글썽이는 주책바가지 아내와, "아빠, 가지 마."라며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들이 있다.
우리 가족은 아이의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1년이라는 계절을 가족 셋이 온전히 보낸 적이 없다. 남편은 매년 12월 말부터 3월 초까지는 북유럽을, 여름에 7월에는 뉴질랜드로 장기 출장을 간다. 또 그 사이사이에 잦은 출장이 많다. 중국에 온 뒤로는, 중국 국내의 장기 출장이라 거리적으로 가까우니 그나마 마음의 거리도 가깝다. 하지만, 1년에 최소 3-4개월이라는 시간을 10년이 훌쩍 넘게 떨어져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겨울이라는 계절에는 늘 아빠와 함께 하지 못하는 의도치 않은 결핍이 생기게 되었다.
그 사이 폭풍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릴 때 아이가 커가는 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서 늘 남편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품고 있었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빠와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함께 보낸 적이 많지 않고, 아빠가 분명히 있었는데 갑자기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또 보이기도 하는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다가, 점점 커가면서 아빠가 오랫동안 집에 없는 상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이 자라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힘든 출장 스토리의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남자'로서의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되고, 언제나 자기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는 아빠에 대한 믿음이 날로 커져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약속도 좋아하지 않는 집돌이 아빠는, 본인의 출장 스케줄에 대한 미안함인지, 아들에 대한 지극 정성의 사랑 때문인지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또, 아이와 함께 보냈다. 출장지에서는 늘 새해에 아이한테 선물을 보내서 아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거나, 한국에 들어올 때는 늘 캐리어 가득 초콜릿과 과자 등의 선물을 많이 사 오고, 아이의 친구들까지 챙기는 아빠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와 아들의 관계가 좀 더 애틋하기도 하고, 둘의 취미가 맞아서, 놀아주지 않는 재미없는 엄마 대신, 아들은 지금도 아빠를 찾고, 출퇴근할 때 서로 부둥켜안고, 볼뽀뽀하고, 아빠도 퇴근하면 아들부터 찾는 끈끈한 부자 지간이 되었다. 아들은 심리적으로 아빠한테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남편이 아들에 대한 마음을 잘 읽어주지 않고, 소홀히 했다면, 지금 아들과 아빠의 관계는 어색하거나, 소원해졌을 법도 한데, 늘 아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스킨십도 자주 하며, 특히 어린 시절부터 쉬는 시간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해서 그런지, 어릴 때의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늘 아들이 뭘 좋아할까? 아들이 원하는 게 뭘까?를 남자의 입장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충분히 채워줘서, 점점 크면서 엄마인 나랑은 배고프다,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소소하거나 생존의 이야기를 한다면, 아빠와는 정말 남자들끼리 즐길 수 있는 스포츠와 본인들의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청소년기 아들은 지금도 장난 삼아 업어달라, 안아달라,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어있듯 자석처럼 아빠한테 착 붙어서 아빠가 침대에 누워서 영상을 볼 때나, TV를 볼 때나, 뭘 할 때 옆에 같이 눕기도 하고, 아빠한테 잔소리도 하고, 아빠한테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오랜 아빠의 부재에 대한 결핍을 정서적으로 잘 딛고 일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기도 하다.
나는 늘 남편한테 '나 혼자 애를 다 키웠다'라며 큰소리를 뻥뻥 쳤지만,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어가며 엄마인 나와는 다른 스타일의 대화를 한다던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늘 그 중재에는 아빠가 있었다. 아빠의 오랜 부재 속에서도, 아들한테 아빠는 엄청 큰 소중한 존재라서 그런지, 내가 백 번 천 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빠가 아들한테 차분히 한 마디 이야기하면 그게 오히려 아들한테 진하게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찰떡같이 붙어있던 잔소리쟁이 엄마와 말 많은 아들
문이 열리고, 아들이 들어오며 있는 힘껏 소리치며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한다. "엄마! 나 갔다 왔어!"
주방에 있다가 반가움에 뛰어나가, "잘 갔다 왔어? 오늘 어땠어? 아이고 고생 많았네."라며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도 그런 엄마의 반응을 좋아하며, 바닥에 냅다 쓰러지고, 나도 같이 눕기도 하고, 참 소란스러운 하교 모습이다.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은근히 서운해한다. 원래 나는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들이, "힘들어."라고 하면, "다 똑같이 다니는 학교인데 뭐가 힘들어." 이렇게 매정하거나, 아들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엄마다. 중국에 온 뒤로 제법 먼 거리를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고,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며 다니는 모습에 나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려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데리러 나갈 경우에는 같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아이의 학교 생활을 듣기도 했다. 물론, 대화들은 아이가 점점 나이 들어감에 따라서, "오늘 똑같았어. 수업하고, 밥 먹고, 수업하고, 끝!" 이런 짧은 대화로 마무리될 때도 많았다.
중국에 온 뒤로 아이에 대한 나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 자체를 바라보니, 아이는 그대로인데, 그냥 뭘 해도 아이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작은 일에도 칭찬과 격려를 하게 되고, 그렇게 아이 탓을 하던 내 모습 대신, 아이의 행동들이 대견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도 더 좋아지고, 전에는 낯 간지러워서 하지 못하던, 아들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말이라도 매번 "우리 아들, 사랑하는 아들, 멋진 아들!!"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니, 그게 습관이 되어 아들도 오히려 그 소리를 은근히 기다린다.
작년 내 생일에 아들이 써준 쪽지에도 '엄마'가 아닌 '엄ㅁ'이라고 쓰여있다. 예전 같으면, '엄마'라고 써야지, 아직 글씨도 못 쓰냐고 타박했을 텐데, 이제는 그냥 웃으면서 '그래, 난 엄미음이다.' 이러면서 아이가 건넨 사랑스러운 쪽지와 혼자 나가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사 온 아이의 마음을 더 크게 보기 시작했다.
아들도 내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뒤에 와서 안아주기도 하고, 나한테 폭풍 잔소리와 메뉴에 대한 요구 사항으로 귀찮게도 하지만, 엄마가 먼저 아들을 진심 어린 사랑으로 대하니, 아들 역시 그 받은 사랑을 나한테 돌려주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로 나는 몸의 어디가 안 좋은지, 갑자기 3-4개월 만에 살이 15kg가 빠지게 되었다. 얼마 전에 아들이 나를 안아주며 순간 심쿵하는 말을 했다. "엄마가 다시 뚱뚱해지면 좋겠어. 그때 느낌이 더 포근해." 웃음이 터져 나와서 한참을 깔깔거리며 남편한테도 이야기했다가, 그건 안 될 소리라고 하면서도 아이의 순수한 말에 내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또 내가 짜증을 내면, "엄마는 배고프면 꼭 짜증 내더라!" 이러면서 빵을 갖다 주기도 하고, 내가 슬픈 발라드만 듣고 있으면, "엄마는 맨날 우울한 노래만 듣더라."이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밝은 노래로 선곡을 해주고 쿨하게 퇴장한다.
내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늘 흰머리를 발견해 주는 것도 아들이고, 뽑아주기도 한다. "왜 이렇게 흰머리가 나는 거야? 늙는 거 싫어. 일하지 말고 쉬어." 이렇게 걱정하듯 말하면서도 곧, 오늘 밥은 뭐냐고 들볶기 시작하지만, 이런 아들의 잔잔한 잔소리가 듣기 좋다. 과거의 나의 모습대로 아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알아주지 못했다면, 또 사랑 표현을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아들과 나는 서로 마음의 문을 꽉 닫고 걸어 잠근채, 서로 말이 안 통한다며, 남탓하며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으려고 했을 거다.
최근에 아들한테 물어봤다가 찡했던 순간이 있다.
(엄마)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뭐야?
(아들) 가족이지.
(엄마) 왜?
(아들) 이유는 없어. 그냥 가족이니까. 같이 사니까.
(엄마) 어머나, 감동이다.
무심한 듯 툭 내뱉은 이 한 마디가 왠지 모르게 마음 저 한편을 울렸다. 아들이 커왔던 자주 이동하고 변했던 환경에서, 그에게 가장 소중한 건 바로 '가족'이었다. 나는 기본적인 양육과 사랑을 주었지만, 아빠는 아들에게 정서적 사랑을 주었던 것 같다.
아이가 학교에서 나름 사회활동을 하고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받고, 그걸 집에 와서 툴툴거리면서 응석 부리거나, 괜히 엄마한테 짜증을 낼 때가 있다. 부모는 아이한테 담벼락 같은 존재이고, 힘들면 기대고 싶고, 마음이 힘들면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늘 아이한테 "언제나 너를 응원해."라며 아이를 묵묵히 지켜봐 주고, 아이가 힘들 때 잠시 충전하고 갈 수 있는 따뜻하고 열린 마음의 부모가 된다면, 아이는 부모의 기본 사랑을 바탕으로 자신의 멋진 인생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 사랑은 아이로부터 부모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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