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제28 화)

(소설) 첫 출근, 설레는 가슴 안고

by 황윤주

제28 화


가을인데도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살갗에 파고들어 자꾸 움츠러든다.


희경은 연수를 받고 발령을 받았다.

집에서 버스로 약 40분가량 소요되는 위치에 있는 작은 출장소였다.

같은 지점에 발령받은 남자 행원과 함께 버스를 타고 그 지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건넸다.

이름은 이 민호, 160cm 정도 되는 키에 금테안경을 끼고, 짙은 남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외모는 깔끔하고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가끔 희경에게 말을 건네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희경은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였다.

민호는 천주교 신자였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희경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왔다.

희경은 짧게 "없어요"라고 대답하였다.

희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랑 사귀어 볼래요?"라고 물어왔다.

"아직은 누굴 사귀거나 할 마음이 없어요."라고 대답하였다.

희경의 말에 민호는 약간 당황했는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버스는 성산대교를 지나서 인공폭포 앞 버스 정류장에 섰다.

그리고 곧바로 지점으로 갈 버스로 갈아탔다.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희경의 성격은 분명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약간 직설적으로 말하는 솔직한 스타일이었다.

그 어색함은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희경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희경이 근무하게 될 지점은 공항동이었다.

주변에 제과점과 다방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이 있었다.

주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동네였다.


지점 안으로 들어가자 신입 직원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족을 맞이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마침 한가한 날이라 직원들과 한 명 한 명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지점장님과 면담도 간단히 하였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명찰을 다는 순간 뿌듯하였다.

'드디어 새 출발을 하는구나!'

가슴이 뭉클하였다.

주어진 업무는 제예금 파트였다.

텔러가 되었다.

창구에 서서 첫 손님을 맞이하는 순간 희경은 수줍은 마음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왠지 낯설었다.

순간 부르르 떨렸다.

설레기도 하였다.

첫 업무를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고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점점 업무가 익숙해졌고 고객 응대도 밝은 표정과 웃음을 잃지 않고 일어서서 하였다.

그래서인지 날이 갈수록 희경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갔다.

희경이 근무하는 모습을 전 직원들이 예의주시하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희경을 좋아하였다.

희경은 기쁘고 행복하였다.


한편 오빠 영호는 군 복무를 잘하였다.

사격을 잘해서 포상 휴가를 받았다.

영호는 집에 올 생각으로 싱글벙글하였다.

군복도 잘 다려놓고 군화도 반짝반짝 광이 나게 닦았다.

날이 밝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영호는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설레었다.

집에 가면 뭘 할까 골똘히 생각하였다.

지난번에 부모님이 다녀가신 이후로 집 생각이 더 간절하게 났었다.


친구들도 만나고 잠도 실컷 잘 생각에 마냥 신이 났다.

기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새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집에 가려면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다.

거리는 시골과는 달리 휘황 찬란하고 시끌벅적하였다.

이제야 서울에 온 실감이 났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그동안 많이 변한 거리가 낯설었다.


희경 어머니는 아들이 휴가 나온다는 소식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들이 오면 먹이려고 음식을 만들었다.

불고기, 전, 오징어 초무침을 하고 나물도 몇 가지 볶아놓았다.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대문을 수시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때마침 영호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희경도 반가운 나머지 달려 나왔다.

영호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져 구릿빛이 되어 있었다.

훈련을 세게 받았는지 얼굴도 몸도 말라있었다.

희경은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여서 시끌벅적 화기애애하였다.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직원들이 신입 직원 환영식을 해주었다.

지점에서 가까운 참치집이었다.

커다란 접시에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었다.

희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임님이 그중에 바다의 아이스크림이라며 하나를 집어서 희경에게 먹어보라며 건네주었다.

희경은 한 번도 회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잠시 망설였으나 성의를 봐서 받아 들었다.

그리고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눈을 질끈 감고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런데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정말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비린 맛도 없고 시원하니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참치가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그래서 다른 것들도 조심스럽게 먹어보았다.

꿀맛 같았다.

김에 참치를 올려놓고 생강절임과 무 순을 얹고 고추냉이를 살짝 찍어 싸 먹었다.

별천지에 온 느낌이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직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희경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본인 차례가 되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머릿속은 온통 복잡하였다.

속도 조마조마하고 타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집중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는 동안 희경의 차례가 되었다.

직원들이 박수를 쳤다.

희경은 평소에 자주 듣고 불렀던 '보리밭'을 천천히 부르기 시작하였다.

'보리~~~ 밭 사~~ 잇길로 걸어가면~~~ '

한 소절 한 소절 정성을 다해서 부르기 시작하였다.

직원들은 조용히 희경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

마지막 소절을 다 부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어쩜 이렇게 잘 부르냐며 야단이었다.

희경은 직원들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환영식은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려 가로등 불빛이 반짝거리며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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