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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07. 2024

아이는 하루하루 내게서 멀어진다



일찍부터 첫째 아이의 방에 침대를 놔 주었지만,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부부와 함께 잤다. 매일 밤 패밀리 사이즈 침대에 남편과 나, 큰 아이와 그보다 세 살 어린 작은 아이까지 총 네 명이 뒤엉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널찍널찍했던 침대도 애들이 유치원생이 되고 나서부턴 비좁게 느껴졌다. 또 크면서 잠버릇이 고약해진 두 아이 때문에 머리나 가슴팍이 발에 치여 오밤중에 깨는 일도 많았다. 


“원상아, 이젠 네 방에서 자면 안 될까?”

아침마다 머리가 까치집이 된 큰 아이를 보며 애원하듯 말했지만, 아이는 입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꿈에 괴물이 나오면 어떡해’,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래’, ‘동생은 엄마, 아빠랑 같이 자잖아!’, ‘오늘은 너무 추워서 싫어’. 밤이 되면 아이는 매번 다른 핑계를 대며 내 옆에 누웠다. 

    

“어휴, 언제 커서 혼자 잘래?”

내년이면 학교도 가는데. 나는 잠든 척 눈을 꾹 감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말했다. 아이는 대답하는 대신 내 새끼손가락을 조물조물 만졌다. 아이는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내 팔을 끌어안고 잤다. 다른 아이들은 애착 인형이나 이불을 안고 잔다고 하던데. 우리 애는 어떻게 된 게 내 팔을 잡아야만 잠이 드는 것인지. 팔을 동아줄 마냥 꼭 끌어안고 자던 아이에게 작게 속삭인 적도 있었다. ‘엄마, 어디 안 가. 네 옆에 있을 거야.’라고. 그때 나의 속삭임을 들었던 것인지, 아이의 애착은 내 팔에서 손으로 옮겨갔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이리저리 주무를 때마다 너무 아파 슬쩍 빼면, 아이는 눈을 감은 채 더듬거리며 내 손을 찾았다. 잠결에도 ‘엄마 거기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아서, 나는 아파도 손가락을 내어주었다.

     

“나 이제 혼자 잘래.”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아이가 혼자 자겠다는 선언을 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열심히 움직이던 남편과 내 숟가락이 멈췄다. “진짜야?”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유치원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젠 햇빛반이 유치원에서 제일 큰 형님이라며, 내년엔 학교에도 가야 하니 씩씩해지는 연습을 해보겠다고 꽤 당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아이가 괜히 기특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와, 우리 원상이 진짜 다 컸네!”, 하며 엄지를 올려 보였다. 마음속으로 ‘이젠 좀 편히 자려나’ 하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밤이 되자, 아이는 자기 방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더니, 어느새 침대에서 빠져나와 안방을 기웃거렸다. 베개를 끌어안고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약해져 ‘같이 잘래?’ 하고 물었는데,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과연 수면 독립이 가능할까, 의심했었지만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에 희망이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안방의 불을 끄며 아이 방을 향해 “잘 자” 하고 외쳤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열린 방문으로 아이의 뒤척임이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자려나, 싶으면 다시 이불이 엉기는 소리가 들렸고, 이젠 자겠지, 했는데 느닷없는 헛기침 소리가 났다. 아이는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무섭다던 괴물과 안방에 누워 있는 엄마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형님 다운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펼쳐져 있겠지.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잠들기 직전까지 내 새끼손가락을 꼭 쥐고 잠들던 아이는 빈손으로 잠이 들었다. 나는 전보다 편하게 누워 있었지만. 무언가를 놓친 듯 휑한 손바닥을 쥐었다 펴 보았다.

     

오래전 나 역시 아이의 몸 일부를 보물처럼 쥐고 잠이 들던 때가 있었다. 한 번도 걸음을 떼본 적 없는 아이의 보드라운 발을 조심스레 손에 쥐었다. 아직 돌이 되기 전이었기에 아이의 발은 내 손에 쏙 들어왔다. 여물지 않은 작고 통통한 발을 꼭 쥐고 있으면 어느새 까무룩 잠에 빠지곤 했다. 앞으로 어디든 나아갈 일만 남은 그 발이 내게 무수한 꿈을 보여줄 것 같았다. 몸 일부를 서로에게 맞닿은 채 각자 다른 꿈으로 떠났던 아이와 나.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 별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다 잠들었던 우리. 동생을 나무라는 듯한 아이의 잠꼬대 때문에 까만 허공에 터지던 나와 남편의 웃음. ‘잘 자. 꿈에서 만나.’ 하며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던 수많은 밤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소란스러웠던 우리의 대화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고요한 천장을 바라보며 어떤 한 시절이 지나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는 아이가 빨리 내 옆을 떠났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아이의 몸을 내 일부처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입히다가 아이는 언제쯤 내 곁에서 멀어질까, 나는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입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씻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 날이 과연 오는 것인지, 언제쯤 오게 되는지 긴 한숨을 쉬었다. 하루를 마감하고 자는 순간까지도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하는 내 상황이 답답하고 버거웠다. 아이가 붙들고 있는 팔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이에게 “언제 클 거야? 도대체 언제 클래?” 하며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이가 빨리 자라는 것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어린아이는 내 말의 의미를 모른 채 그저 팔다리를 뻗으며 까르르 웃었다.

     

낮과 마찬가지로 시간마다 잠에서 깨 분유를 먹이던 밤도, 잠투정에 징징거리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어금니를 꽉 깨물던 밤도, 잠꼬대하던 아이의 발에 걷어차이며 악! 소리를 내며 일어났던 밤도, 이제 모두 지나가 버렸다. 새로운 밤은 수없이 우리를 찾아올 테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밤을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주문을 외듯 밤마다 아이를 바라보며 했던 말들. 빨리 커라, 빨리 커라. 나는 이 말이 이렇게 부지런히 이뤄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깊은 밤, 나는 아이의 방에 몰래 들어가 보았다. 큰 세상을 뛰어다니느라 종일 바빴을 아이의 몸은 고요히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쯤 꿈속에선 또 얼마나 바쁠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작게 웃음이 나왔다. 발치로 밀려난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무구한 아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옷을 입고, 혼자 씻고, 혼자 잠을 자는, 내가 늘 상상해 오던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반갑지가 않았다. 오늘 하루만큼 멀어진 아이의 얼굴을 낯선 사람 얼굴 보듯 바라보다가, 훌쩍 커버린 발을 꼭 쥐어보았다. 아, 언제 이렇게 컸을까. 세상 속으로 계속 나아가며 점점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발. 하루하루 경쾌하고 신나게 뛰어다녔을 아이의 발은 이제 두 손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의 발을 쓰다듬으며 지나가 버린 밤을 아쉬워했다. 어서 크라고, 빨리 크라고 더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젠 그저 천천히, 천천히 커 주길 부탁하고 싶었다. 이 발로 꿈속 어딘가를 하염없이 걸으며 아이는 자면서도 계속 자라고 있겠지. 아침마다 마주하는 아이의 얼굴은 내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달라져 있을 것이다. 훗날 아이를 향해 ‘언제 이렇게 컸냐’는 말을 하면서, 나는 나보다 더 커진 아이의 손과 발을 보며 또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빨리 크라고, 어서 자라라고 외웠던 주문이 끝날 줄 모르는가 보다, 하면서.



<본 에세이는 웅진싱크빅 매거진 '엄마는 생각쟁이' 1월호에 수록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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