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Feb 07. 2024

엄마는 사랑? 엄마도 사람

아이가 목감기에 걸렸는지 이른 저녁부터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열이 있나 싶어 체온도 재 보았지만, 다행히 정상이었다. 잔기침에도 새벽에 열이 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밤사이 열이 오르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아무 약이나 먹일 순 없고, 대신 좀 먹을 수 있는 게 없을까 싶어 집 안을 둘러보다 내 책상 속 서랍에 있던 프로폴리스 사탕이 생각났다. 가끔 목이 잠길 때나 입이 심심할 때 아껴 먹는 사탕이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딱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원상아 사탕 좀 먹어 볼래?”

아이는 저녁에 웬 사탕인가 싶어 신이 나 내게 다가왔다. 이건 프로폴리스 사탕이고 기침에 도움이 될 거란 내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아이는 오직 사탕이란 단어에 꽂혀 입을 쩍 벌렸다.


“기침이 좀 나아질 거야.”

나는 내 바람을 담아 아이 입속에 사탕을 넣어주었다. 아이는 입에 굴러들어 온 사탕을 챱챱 소리가 나게 빨더니 맛이 낯설었는지 곧 울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맛이 왜 이래? 우웩. 우웩.”

자신이 생각했던 사탕 맛이 아니었는지, 아이는 헛구역질하는 흉내까지 내며 좀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먹어 봐. 안 먹는 것보단 나을 거야.”

나의 설득에도 아이는 앞니 사이에 사탕을 문 채 발을 동동거렸다. 도저히 끝까지 먹을 것 같지 않아 뱉어내라고 휴지를 건넸다.


“퉤”

휴지 위로 침 범벅이 된 사탕이 떨어졌다. 아이는 입을 쓱쓱 닦더니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아까워.”

나는 거의 새것이나 다른 없는 사탕이 아까워 탄식했다. 곁에 있던 남편이 피식 웃으며 “아휴, 자식 입으로 들어갔던 게 그렇게 아까워?” 하고 물었다. 아깝지. 딱 세 개 밖에 안 남았던 건데. 어디 아까운 게 사탕뿐인 줄 아나. 나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입을 쭉 내밀었다. 아이가 연필심으로 구멍 낸 한정판 지우개. 장난치다 찢어 놓은 선물 받은 책갈피. 혼자 먹으려고 냉장고 깊은 곳에 숨겨 놓은 걸 기어코 찾아내 먹어치운 초콜릿까지. ‘그거야 다시 사면되지.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아이들 손에 너덜너덜해진 물건을 보며 남편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내 손에 쥔 것을 쉽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았지만, 사탕과 초콜릿, 스티커와 책갈피 따위는 한없이 아까웠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도 좋아하는 딸기를 한 팩 사서 나눠 먹을 때면, 언제나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가는 딸기를 구경만 해야 했다. 나도 겨우 두 개 먹었는데, 한 팩을 다 먹고도 ‘더 없어?’라고 묻는 아이들이 이상하리만치 야속했다. ‘야. 엄마도 두 개 밖에 안 먹었거든?’ 그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대로 꿀꺽 삼켰다. 누구는 애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던데. 


나는 모성이 부족한 걸까? 접시에 남겨진 딸기 꼭지를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남편이 옆에 있었더라면 ‘그까짓 딸기, 또 사 먹으면 그만이지!’ 했겠지. 엄마니까,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내 욕심을 억누르고, 아이들에게 내 것을 더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 역시 길에서 아이를 곁에 두고 혼자 무언가를 먹는 엄마를 보며 앞뒤 사정은 모른 채 ‘엄마가 애는 안 챙기고 자기만 먹고 있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을 나도 모르게 품고 있었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엄마는 지금 말고 나중에. 아이들을 먼저 챙기고 나중에. 자꾸만 엄마를 후순위로 두는 세상에 버럭 화를 내고 싶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1순위가 되고 싶었다. 

    

내 30대 마지막 생일날이었다.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켜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몸을 촛불 쪽으로 기울었다.

“엄마 생일이니까, 이 초는 엄마가 끄는 거야.”


내 말에 촛불에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둘째가 피- 하며 입을 쭉 내밀었다. 내 생일날,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부는 일도 아이들의 몫이었다. 한창 촛불을 끄는 재미를 알아가던 나이. 초를 불어 끄고, 또 불을 붙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던 때가 있었다. 입바람에 살랑거리다 훅 꺼지는 촛불의 모양새가 재밌었는지,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케이크를 먹을 일만 있으면 서로가 초를 불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입바람이 약해서 남편이나 내가 함께 불을 꺼주면 몇 번이고 불을 다시 켜야 했다. 자신들의 생일은 물론이고, 크리스마스와 우리의 결혼기념일, 또 나와 남편의 생일에도 촛불 끄는 일은 아이들 차지였다.


“그래- 너희가 꺼! 차례차례 한 번씩!”

서로 촛불을 불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아이들에게 그날의 주인공 역할을 빌려주는 일도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초 같은 건 누가 끄던지,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면서. 하지만 올해부터 마음이 달라졌다. 마흔을 앞두고 있어 그랬는지 몰라도 이제 생일 초만큼은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에이, 애들이 좀 끄면 어떻다고.”

뾰로통해진 둘째의 표정에 눈치를 보던 남편이 내게 핀잔을 줬다. 마치 눈빛이 ‘네가 애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사소한 것 하나에 욕심부리는, 너그럽지 않은 엄마를 꾸짖듯. 남편의 그런 눈빛에도 흔들림 없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이제 생일 초는 생일인 사람이 끄기로 해. 오늘은 엄마 생일이니까, 엄마가 끄는 거야. 알겠지?”

내 말에 둘째는 “치! 알겠어!” 하고 되레 성을 내며 말했다. 나는 못 본 척, 살랑이는 촛불 앞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감았다. 내 나이만큼 놓인 초 앞에서, 엄마의 역할이 아닌 내가 이루고 싶은 소원들과 오늘을 기점으로 1년을 잘 보내고 싶다고 다짐했다. 남이 아닌 내가 이뤄야 할 것들, 아이들을 위한 소원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소원을 떠 올리며 입바람으로 촛불을 한꺼번에 꺼뜨렸다. 순식간에 암흑이 된 거실에서 아이들은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거실 등을 켜고 바라본 아이들의 표정엔 아쉬움이 남아 있었지만, 케이크를 한 입 먹자 금방 미소가 돌았다.


“엄마 말이 맞아. 주인공 날이니까 주인공이 초를 꺼야 해.”

달콤한 케이크에 마음이 넉넉해졌는지 첫째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말했다. “맞아. 엄마가 주인공이야!” 아까까지만 해도 입을 쭉 내밀고 있던 둘째도 입가에 크림을 묻힌 채 말했다. “와, 원상이랑 시안이가 엄마보다 더 어른 같네! 느으아아악!” 끝까지 나를 약 올리는 남편의 옆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아빠의 비명에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촛불을 끄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엄마에게도 엄마의 몫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고 바랐다. 일렁이는 촛불을 앞에 두고 빌었던 소원들이 이뤄지기 위해선 나는 조금 더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내가 이기적인 엄마든, 모성애가 가득한 엄마든 자신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손에 들린 사탕을 휴지통에 버리며 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엄마 사탕 다신 안 줄 거야.”

“치. 나도 달라고 안 했거든.”

아이는 그런 사탕은 줘도 안 먹을 거라고 얄밉게 말했다. 너는 모르지. 아까 커피가 들었다고 엄마 혼자 먹었던 과자는 사실 초코맛이었다는 걸. 나는 아이 뒤통수에 메롱-하고 혀를 내밀었다.     



<본 에세이는 웅진씽크빅 매거진 '엄마는 생각쟁이' 2월호에 수록된 글 입니다>

이전 01화 아이는 하루하루 내게서 멀어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