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의 집 앞 산책길을 기록하고 싶다. 나무 계단 혹은 데크로 만들어진 내리막 길은 한국의 숲속마을과 비슷했지만, 산책로가 한바탕 이어지더니 광활한 잔디밭이 나왔다.
주택가에 이 정도의 규모의 산책로와 계곡, 커다란 잔디밭이 나오다니! 동생은 나의 방문으로 토론토와 그 근교 유명지를 보여줄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이 점 하나로도 마냥 행복할 예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당장 살 곳은 아니라서, 완전히 마음에 들게 되면 곤란할 것 같다.
한국에서 내 나름 숲이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우리 집도 한 '숲 속'하는데 이곳의 푸릇함은 남다르고 한없이 이어지는 아름답고 한적한 주택가는 참으로 탐나지 않을 수없다.
요새 한국도 개를 키우는 세대가 많지만, 캐나다에서 반려견은 하나의 문화이자 생활이다. 대부분의 개들은 주인의 인도를 따라서 얌전히 산책길을 나서는 편이고,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전용 파크도 따로 있다.
@ 광활한 토론토의 잔디밭
길을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아무리 보아도 바다로 보이는 호수, 해안이 나오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수영을 하고 있다. 건강해 보이는 살찐 갈매기들도 나에겐 꽤 정겨운 존재이다. 집에서 십여 분 걷다 나와 이런 파아란 비치가 있다면, 날마다 찾아갈 곳이 있어 감사할 것 같다. 물론, 이 역시 여행자의 입장일수도! 있지만, 나는 걷기를 좋아해 분명 사흘이 멀다 하고 나올 것이다. 책 한 권, 생수 한 통을 들고서! 아마 커다란 선글라스도 꼭 낄 것이다.
@작은 사람들과 작은 나
잠시 머무는 여행지로 토론토
다른 사람들은 여행은 무엇일까. 일상을 떠나와 잠시 휴식을 누리고 리프레시를 경험하는 순간일 수도, 인생을 보내면서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코 적지 않은 해외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레저나 휴양, 관광을 위한 여행들이라 일상을 누리고 머물기 위한 여행과는 굉장히 다르다. 대학 때 누린 캐나다의 일상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머물고 있다가 이번 토론토 방문에는 툭. 하니 지금의 현실과 비견되곤 한다. 아마 근래 많은 이들이 제주도나 발리, 혹은 호주나 유럽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이유는 이런 "머묾"을 경험하고 싶어서 일 것 같다.
다만 다른 곳에 비해 한국에서 토론토만을 목적으로 해외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관광으로서의 여행으로는 큰 기대가 없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가족과의 만남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니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을 물론이거니와 토론토 북쪽에 있는 토버모리를 방문한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타임!"하고 외치고 온 현실의 나에게
이번 여행을 하기 전에 직장생활의 피로감이 최고조에 다 달았다. 문제성 일에는 해결 방안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은 빠르게 정리하는 편이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관리가 되는 편이지만, 올해는 정말 피곤스럽기 짝이 없다. 혹은 이미 정답을 내려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혹은 정답이 나왔거나. 어느 쪽을 보더라도, 내가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어디 한 번 보자~했을 때는 모든 일이 트리거 마냥 한 곳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운명은 없더라도, 대부분의 인생은 제한된 상황에서나마 주어진 자유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사람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지에서 다른 여지가 많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스스로에게 고백할 뿐이다.
@ 해외에 가면 신호등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인생에도 신호가 있을 텐데, 나는 그 신호를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직관은 좋다지만, 때때로 일상에 둔감한 편이라서 요새는 딱히 신호 감지에 자신이 없다.
일본의 신호등은 삐악 대는 안내 음성이 친근해서 오래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서 딱히 재밌지는 않지만.
토론토의 신호등은 보행자나 운전자에게 신호를 주려고 세심하게 표시를 해 두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자전거 통행 가능 표시 같은 거다.
한국으로 돌아간 나에게도 인생의 신호등이 음성이라도 지원이 되면 좀 좋을까 싶다..보통은 내 안의 소리를 들으라는데, 나는 내가 말해주는 내면의 소리보다 훨씬 지혜롭고 은혜로운 신의 음성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