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없이 산다는 것

유혹과 염려를 떨쳐내 보면

나만 괜찮으면 당당하다?

성경에는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한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사도행전 24:16)"

성경을 잘 보지 않는 크리스천이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용서받는 줄 알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로마서 14:12)" 또는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 하리라(베드로전서 4:5)"를 보면

오히려 믿는 자들이 말씀을 외면했을 때 그들의 신 앞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것임을 알 수 있다.


합리화하기 전에 성령(양심)의 소리를 듣자

그래도 막상은 보이지 않는 신에게 눈으로 귀로 보지 않으면 잘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가

눈 가리고 합리화하면서 양심을 속이기는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양심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양심과는 다르다. 성경에서 양심은 신이 인간에게 보낸

신의 영혼과 같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론 괜찮더라도 그보다 차원 높은 신의 영이

말해주는 것이다.


이번 주는 나에게 두 가지 거리낌이 있었다.

한 가지는 내가 떳떳하면 됐지 하는 것과

또 한 가지는 공식적으로 표명했을 때 괜한 질투와 개입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에 만 보 이상을 걷는데도 소화가 안됐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것만 같은 거북함이 생겼다.

그래서 제안된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거절 했다.


남은 한 가지 일은,

생각하자면 "내 거라고!, 너희들이 뭘 도와줬다고 간섭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먼저 내보이며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역시도 먼저 오픈해서 오해가 안 생기도록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좀 억울하고 짜증 나면 어떤가. 조금이라도 불편해질 수 있는 소지를 없애고

누가 공격해도 떳떳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 걷다보니 백운호수까지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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