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유전자
지지난 금요일 발제에 목을 쓴 뒤로 결국 편도염이 왔다.
COVID 19를 전혀 의심 못할 만큼 늘 그렇듯이
똑같이 목이 붓고 몸살 기운에 앓아누웠다.
자가 키트 검사는 음성이었다. 한 주가 지나고 이번엔 남편이 아팠다.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여 가까운 진료소에 테스트를 받아봤지만, 코로나에 안 걸린 내 옆에 남편은 확진, 나는 아니었다.
아픈 것은 똑같은 데 코로나가 아니어서
회사 업무를 면제받지 못한 채 다소 억울했고, 휴가를 쓰기엔 하루 쉰다고 될 일도 아닌 상황이었다.
아프면 안 되는 각자의 이유
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안 되지만,
나 스스로 만큼은 논문 퍼블리싱 일정, 발제나 강의가 있으면
"절대 아프면 안 된다"라는 배수진을 치고 있는 편이다.
회사일은 아프면서까지 해야돼냐 싶지만,
자기 정체성이 걸린 일은 살아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에 아파서는 안된다.
연구는 아픈 컨디션에서 할 수 있는 정리 작업이 아니어서
매일 주사를 맞기로 했다.
덕분에 4월에 있을 두 군데 학회의 주제 발표를 위한 작업을 다시 해나갈 수 있었다.
젊은 날 직장과 맞바꾼 자유
여름에 동생이 있는 캐나다에 갈 비행기 표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주변에 은퇴자 말고는 2-3주 오랜 휴가를 낼만한 동행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팬데믹 이후 나에게 주어졌던 자유로운 2년에 특별한 감사를 보내게 된다.)
나 역시 힘들게 첫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 인생에 방학이 없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살아남고자 치열했던 20대 절반과 30대에 방학을 가지려면. 직장을 그만둘만한 용단이 필요했던 때였다.
뿌듯하게도 한 번의 용기를 내기는 했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그것이 자유의 대가였다.
나에게 그만한 자유에의 갈망이
배움에 대한 갈망이
도전에 대한 갈증이 아직 남아 있을까?
문득 자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