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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Jan 25. 2024

나를 지탱해 준 힘

흐릿해진 기억너머 분명 존재하는 사실들

3년 차가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나를 늘 감시하던 상사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오전에는 제품의 생산진도와 선적현황을 체크하고 오후에는 거래처의 담당자들과 계약을 따기 위한 미팅을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거래처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그 거리에 많은 기억이 묻어있다. 돌이켜보면 즐거운 순간도 많았다.


그 거리에 26살 청춘의 내가 뾰족구두를 신고 걷고 있다. 선배는 항상 나보다 한걸음 더 빠른 걸음이지만 나의 속도를 맞춰주고 있었다.


계약을 많이 딴 날의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위풍당당하게 걷고 있다. 아마도 회사를 계속 다닐 작정인가 보다. 분명 그 전날에 퇴사한다며 울고불고했을 텐데 말이다.


주문을 실수로 잘못 넣어 큰 사고를 친 내가 축 처진 어깨로 걷고 있다. 토닥여주고 싶다. 괜찮다고 알려주고 싶다. 난 10년 후 미래에서 왔는데 그 사고는 다 잘 해결되었다고.


상사의 칭찬을 들은 날의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걷는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드디어 인정받은 기분이겠지.


상사의 큰 호통을 정면으로 받아친 날, 무표정한 내가 보인다. 그런 내 옆에는 늘 나를 위로해 주던 선배가 있다. 어떤 날은 같이 욕을 해주고 또 어떤 날은 맛있는 점심을 사줬다.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로 상처 난 내 마음을 치료해 줬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결국 나는 사람 때문에 치료받았다. 그들의 다정함이 나를 지탱했다. 일은 힘들 때도 많았지만 성취의 순간이 나를 이끌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 내일 보자
이번 주도 고생 많이 했어. 주말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


이 다정한 사람들을 어김없이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흔들리는 나를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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