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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Jan 24. 2024

시말서를 쓰게 된 비참한 날이었다.

학습된 무기력함이 나의 일상을 지배하면 생기는 일

신입 2년 차, 2013년의 10월이었다.


한 해의 실적이 종결지어지는 중요한 10월, 불행히도 상사의 타겟은 어김없이 또 나였다.


상사는 나를 불러 세워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사유는 10월에 선적할 수 있는 물량을 11월로 미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시말서를 써야 할 만큼 중대한 사유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그는 나의 이해와 공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명령과 복종, 지시와 수행만 존재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시말서를 작성하고, 하루 종일 그의 아바타처럼 시키는 일을 기계처럼 수행했다.


그날 역시 난 나에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고 그를 용서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오와 원망, 나 자신에 대한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일기를 쓰며 매일을 버텼다.   




2013.11월의 일기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이 시킨 것만을 최우선 순위로 해야지만, 일 잘한다 능력 있다 인정한다.

나는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무능력하고, 문제투성이이고. 고칠 것이 많은 사람일까. 얼마나 많은 날들을 울면서 버티면서 이악물면서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는 이상 또 얼마나 많은 날들을 울면서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모진 부분들이 다듬어져 가는 과정일까, 바보같이 내가 견뎌내는 것일까 선배가 지적한 대로 나의 그런 단점들이 다 고쳐질 때까지

나는 여기서 훈련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님, 나의 장점들을 드러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할까.




그 당시 나는 매일 나 자신을 비하했다. 무능력하고, 문제투성이고,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서도 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건 또 다른 불행을 맞이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회사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회사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회사에서의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나 자신을 포함한 회사에 있는 사람들, 내가 하고 있는 업무, 모든 게 혐오스러웠다. 잠을 자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이 무서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면증이 심해졌고, 소화가 되지 않고, 얼굴색은 점점 생기를 잃었다.

왜 나는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나는 과거의 나에게 되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다. 그때의 나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내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 사람처럼 모든 게 의미 없었다. 이곳을 떠나도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따뜻한 품을 내주며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어느 곳을 가도 넌 빛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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