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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Jan 24. 2024

매일 팀원들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나의 아침 루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비밀

2012년, 1월. 첫 출근 날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철강’,‘종합무역상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철강 사업부 신입사원 동기 6명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직원들에게 기립해서 “안녕하십니까?”를 외쳤다.


다음날, 출근을 했더니 동기들이 소속팀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나도 동기들을 따라 팀원들의 쓰레기통을 비웠고, 그렇게 3년간 팀원들의 쓰레기통 비우는 일이 나의 출근 후 아침 루틴이 되었다.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군대조직문화에 치를 떨고 떠나는 동기들이 생겼다. 나 역시 매일 밤, 매일 아침 퇴사를 고민했다. 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업무, 다니고 싶은 회사가 없는 것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매 순간을 망설이고 고민하며, 바쁜 일상 속을 허덕거리며 나는 종합상사 철강사업부에 7년을 살아남은 여자 영업사원이 되었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재들 사이 수위를 한참 넘는 29금 농담, 직설적이고 거친 업무 피드백을 견딜만한 마음의 굳은살이 단단하게 배겼다는 말이다.


추임새같이 쓰이던 거친 욕에 상처 입어 눈물을 참고 화장실로 달려가 몰래 훌쩍이던 때도 있었다.


이건 초등학생도 다 할 수 있는 일이야


나의 상사는 시시때때로 나의 업무영역을 비하했다.  내 업무에 가치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결국 상사 앞에서 눈물샘이 터져 울음을 감출 수 없는 날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메시지에 사과는 없었다. 이런 것도 못 버티고 울음을 터트리냐는 핀잔뿐이었다.


나는 그 시절, 퇴근 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오늘 나에게 거친 말로 상처 준 사람을 매일 용서하고 또 용서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그들을 향한 분노와 미움은 속절없이 커져갔다. 7년을 넘은 시점에서 나는 ‘견디고 있음’의 정도를 지나 이미 ‘스며듦‘의 상태였다.


이 곳에 스며든 나의 모습은 끔찍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선배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후배들을 대하고 있었다. 후배의 작은 실수에도 크게 다그치며 혼냈고, 그 방법이 후배의 성장을 독려하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후배를 위하는 척 포장하고 후배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시절 미숙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나의 미숙함으로 상처를 받았을 내 후배에게 용서를 구한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미숙했던 과거의 나를 인정한 지금에서야 나는 내 선배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그대들이 나에게 줬던 수많은 상처를 용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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