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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Jan 27. 2024

먹고 자고 싸기의 무한 루프

초보맘의 육아일상

2018년 1월, 하얀 눈이 미소 되는 어느 겨울, 아이가 태어났다.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경이로움 보다 심장이 뛰고 있는 작은 생명체가 내 뱃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만큼 나는 이 생명체가 나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감이 전혀 없는 초보 엄마였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의 모든 일상의 규칙이 완전히 어그러졌다. 10시에 잠들어서 7시에 일어나는 일,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는 일, 끼니를 챙기는 일… 너무 당연했던 일들이 모두 어긋났다.


내 존재는 사라지고, ‘아기를 위해 존재하는 나’만 세상에 남은 듯했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녹록지 않았다. 새벽에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항상 잠이 부족했다. 모유수유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전문가에게 코칭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모유수유는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었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는 큰 사치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부엌에서 이것저것을 주워 먹었다.

임신 때 찐 살은 또 왜 이렇게 안 빠지는지, 어쩌다 찍힌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면 뚱뚱보 아줌마가 되어있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우주에는 아이와 나, 단 둘만 존재했다. 남편은 저녁에만 잠시 방문했다 곧 떠나는 손님이었다. 그나마 손님 같은 남편이 잠시라도 방문해 줘서 숨통이 트였지만, 아침 해가 뜨면 나와 아이를 두고 다시 떠날 손님이었다.


내 우주 안 시계는 아이를 중심으로 돌았다. 먹고, 자고, 싸고, 또다시 먹고, 자고, 싸고, 아이와 함께 나는 무한 루프의 지옥 속에 있었다. 내가 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이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 끔찍한 무한루프 지옥에 나를 빠트려놓고, 매번 나를 구하러 왔다. 아이가 나를 구하는 방법은 매번 동일했는데 내 눈을 마주하고 미소 짓는 것이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달콤한지 온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아이는 내가 가진 모든 사랑과 마음, 내 젊음과 청춘, 체력을 먹고 쑥쑥 자랐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가진 것 중 얼마큼을 내어주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내가 마주한 고통의 크기는 10이었지만, 10의 고통을 한순간에 잊게 해 주는 1의 행복이 내겐 있었다.   

 

내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 석자가 더 익숙해지는 날이 이어졌다. 나는 어딜 가나 아이의 엄마로 불렸다. 세상은 이제 나를 ‘아이 엄마’로만 인식했다.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나는 영영 나를 되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다시 되찾고 싶었고, 이 무한루프의 우주에서 빠져나와 내가 존재하는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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