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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뚫고 두물머리에서

물의 정원과 수종사

by 맘달

#물의 정원을 걷다


일출을 보러 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한겨울에 꽃을 보러 온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없고 사람발길마저 뜸한 곳을 걷고 싶었을 뿐이다. 도심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겨울의 맨얼굴, 어렸을 적 느꼈던 날것의 겨울을 만나고 싶었다.


뼈대만 남은 대자연 앞에 서면 티 없이 맑아지는 것만 같다. 마치 성지순례라도 온 것처럼 조용히 바람을 거슬러 걸으면 겨울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여백이 많은 물의 정원
액자 포토존

물의 정원을 상징하는 뱃나들이교를 건너 강변 따라 산책을 하는데 초록도 없고 밝은 빛깔의 꽃도 없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좋았다. 그저 텅 빈 공간에 매서운 바람만 가득했어도. 북한강 위로 부서지는 햇살에 물살이 비늘처럼 빛이 났고 무채색의 풍경위에 드러난 하늘은 하염없이 파랬다.

뱃나들이교
강물에 파묻힌 나무들은 예술작품이다
사방이 고요한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오리만 둥둥
쩍쩍.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크다






#수종사에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극찬했다는 절이 궁금해서 뒤져보니. 금강산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두물머리에서 하루를 묵게 된 세조가 한밤중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가 보니 18 나한이 앉아있는 바위굴이 있었고. 굴속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렸다고 해서 절을 짓고 수종사水鐘寺라고 했다고 한다.

사찰입구에서 불이문과 해탈문을 지나야 사찰이 드러난다

명상의 길로 걷다 보면 불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불이문을 나온다. 불이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한 발 두발 딛다가 고개 들면 눈앞에 해탈문이 나타난다. 그 문을 통과해야만 사찰의 모습이 드러난다. 물의 정원 뱃나들이교에서 아득하게만 보였던 절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난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 마재는 정약용의 고향이라 이곳에도 와보았으리라.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는 수종사에 노닐며(游水鐘寺)라는 시가 전해지는데 14세 때 지었다고 한다.

늘어진 넝쿨이 돌 비탈을 덮어
산사 가는 길 찾기 어려워라
산등성 그늘에는 겨울 눈 남았으나
모래톱 밝은 곳엔 아침 안개 흩어지고
샘물은 움푹한 구멍에서 솟아나며
종소리는 깊은 숲에서 울려 퍼진다
유람의 걸음을 두루 옮기리니
그윽한 곳 놀이의 기약을 어이 그르치랴.

- 네이버 지식백과 번역 옮겨 적음
대웅보전
산사풍경
500살이 넘는 은행나무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평평한 곳에서 가파른 곳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 별 거 없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이 숨을 죽이는 고요 속에서 아늑함이 깃들어 있었다.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칼바람을 뚫고 나아갈 수 있게 등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것만 같아, 짧은 나들이에서도 충만한 기운을 얻고 되돌아올 수 있었다.




'강과 나목, 햇볕, 그리고 칼바람 모두 고마웠어. 걷는 즐거움을 줘서, 함께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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