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잔치 소감문
잔치가 있었다. 아들의 백일잔치. 다시 태어나 어린애가 된 아들은 100일을 맞았다. 100일 잔치를 한다는 것은 100일 동안 단도박(도박을 하지 않는 것)을 했다는 뜻이다. GA(익명의 도박중독자 자조모임)에서는 단도박 100일이면 100일 잔치, 단도박 1년이면 1년 잔치... 이런 식으로 하는데 잔치의 주인공 협심자協心者(중독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는 뜻)는 자신의 고백을 담은 소감문을 발표한다. 가족도 발표를 하게 되는데 그날 나는 이렇게 소감문을 썼다.
+ 저는 도박 중독에 대해 무지했고 무지한 만큼 무모했습니다.
제가 아들이 앓고 있는 '도박이라는 병'에 대해 제대로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빚을 갚아주지 않은 단호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도박을 끊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돈줄을 끊어도 어딘가에서 돈줄이 당겨오는데. 왜 저러는지 정말 알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왜 그런 거짓말로도 모자라 범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도박병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닥 체험'은 도박 중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힘으로, 내 나름대로 했던 노력이 아들이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저항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박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싸울 상대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허용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밀쳐내고 부정한들 이미 걸려버린 병이 저절로 낫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도박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취약한 게 요즘 젊은이들인데 내 아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은 한참 지나서야 받아들이게 됐죠.
아들의 병이 완치는 아니어도 잠재울 수 있는 병인 것처럼 저의 불안도 끊어낼 수는 없어도 잠재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내가 낳고 내가 길렀다고 해도 아들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자식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자식이라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도박병의 증상 중에서도 특히 거짓말 때문에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인연을 끊고 멀리 도망가 살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다 큰 성인인데 혼자서 못 살 이유도 없을 거고,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차라리 눈앞에 엄마가 없으면 정신을 차릴지도 몰라,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아들의 병은 깊어지고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병에 대한 항체도 없는 환자를 방치하면 안 되는 건데,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데 몹쓸 병에 걸린 아들을 나 몰라라 했던 그때가 마음에 걸립니다. 다시는 아들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치료와 회복은 환자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니까.
+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박병하고 싸울 때는 힘들기만 했었는데, 평생 동반해야 할 질환으로 받아들이니 평온해졌습니다. 저희 母子에게는 이곳 GA와 Gam-Anon 모임이 집단치료의 장입니다. 도박병을 잘 관리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안심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여기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덕분입니다. 중독에서 회복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00일 잔치가 기쁜 건 확실한데 기쁨에 다다를 때까지 헤쳐온 힘듦 때문인지 소감문을 발표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숙연해진다. 미리 써 온 소감문을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한탄, 한숨, 안타까움, 용기, 희망이 뒤섞여 공간을 꽉 매운다. 격려하고 다짐하는 시간이지만 도박중독은 다짐만으로 되지 않는 만성질환이라 허무감이 들기도 한다. 과연 100일 잔치가 1년 잔치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실수와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한 슬픔으로 중독과 회복사이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나마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잔치에 모인 '경험과 힘과 지혜'를 나누는 협심자와 가족들이다. 중독과 회복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자조모임의 참석과 하루하루 기쁘게 사는 것뿐이다. 이것이 10년 넘게 도박중독자의 엄마로 살아 터득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