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않은 편지 3
오빠, 다음 주에 내 생일이 들어있어. 기억하고 있지. 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이 있긴 한데, 딴 얘기 좀 하다 마지막에 말할게. 이상하지, 근데 오빠가 놀랄 것 같아서 그래.
생일, 하면 할 말이 좀 있지. 우리 집은 생일이 중요했잖아. 그런데 시집갔더니 글쎄, 훈이 아빠네는 가족끼리 생일을 챙기지 않는 거야.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에 '생일이 뭐 대수냐'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내가 결혼한 사람이 이렇다고? 무던한 남자라서 좋다고 했던 게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구나, 덜컥 겁이 나더라고. 훈이 아빠한테 난 생일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빠득빠득 챙겨줘야 하는 거라고 알려줬고 기어이 선물을 받아냈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것은 서글펐지만 그래야만 했어. 결혼 초반 기선제압, 난 그걸 하고 있었던 건가 봐.
생일, 하면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어. 오빠도 기억날 거야. 내가 산아래 허름한 단독에 살던 때였어. 동생 생일이라고 오빠가 부모님 모시고 왔었잖아. 랍스터랑 과일박스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선 오빠가 산타였다니까. 우리 집 애들 신이 났었잖아. 나는 좋다는 티도 못 내고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훈이아빠한테 받지 못해 서운했던 것, 챙기고 싶어도 불가능한 현실, 당시 우리 형편을 오빠한테 들킨 것만 같았어. 젊었던 그때만 해도 친정식구한테 잘 사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으니까.
이제부터 오빠한테 생일 선물을 말할게. 서론이 좀 긴데 괜찮지. 그러려면 15년 전, 오빠가 떠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오빠가 가고 얼마 후, 훈이의 도박문제를 알게 되었어. 난 도박에 '도'도 몰랐으니까 어쩌다 실수로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구덩이에 빠진 거니까 빼내면 끝일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어, 도박중독이었던 거야. 놀랬지! 오빠가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돼. 위로가 싫어서가 아니라 이건 위로가 되지 않는 거라서 그래.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식으로 벽을 치고 싶지 않은데 말로 다할 수 없는 '달래 지지 않는 슬픔' 같은 거라서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고 그러려고 하는데 아픔과 슬픔은 쉽게 가시질 않아.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훈이는 계속 잘 나가는 줄 알고 훈이 동생들도 잘 풀렸다고 부러워해. 고생한 보람 있다고, 말년복 터졌다고. 정말, 세상에 100%는 없는 가봐. 살만해지니까 이런 일이 생기네. 사는 게 참 이상하고 돌연해.
오빠한테 대충이라도 말하고 나니까 그나마 좀 낫네. 한동안 뭔가가 명치에 걸려있었어. 정확히는 몰라도 왜 생겼는지는 분명해. 훈이가 대학졸업하고 꽤 괜찮은 직장을 구했고 잘 다니나 싶었는데 권고사직 당한 다음에는 눈에 띄게 망가졌어. 멋 부리고 우스갯소리 잘하던 애가 뭔가 쫒기 듯한 눈빛으로 외모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정도까지...... 오빠가 사춘기 때 준이에 대해 일일이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훈이에 대해 일일이 다 말하기가 힘들어. 겪을 만큼 겪고 눈앞의 현실을 물끄러미 바라보듯이, 지나쳐가듯이 내버려 두는데도 훈이의 상태에 따라 나도 휘청거리게 되곤 해. 세월이 약이라 그나마 내가 터득한 게 뭔지 알아?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난 무작정, 밖으로 나가, 진이 빠질 때까지 걷곤 해. 어떤 때는 발이 아파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내가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있어. 자학하듯이 걸었어. 걷는 것 외에 달리 할 게 없어서 걸었어. 죽어버리고 싶은 날, 내가 미친 듯이 걷고 있더라고. 나한테는 걷기가 약이었어.
생일선물 얘기하다 아주 멀리 와버렸네. 내게 필요한 건 단 하나야. 우리 훈이가 회복되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것. 오빠가 멀리 저 세상에 있으니까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오빠한테 하소연하고 싶었어. 만만한 사람이 오빠니까.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거 아냐.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끔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 꼭 선물해 줘. 부탁이야.
내가 하루를 사는 만큼 오빠를 만날 날이 하루씩 가까워지는 거겠지, 점점. 잘 지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