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오르곤 해

보내지 않은 편지 2

by 맘달

오빠, 그동안 잘 지냈지. 내가 있는 곳은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어. 봄비가 세상만물에 스미듯 내 편지도 오빠 마음에 스며들면 좋을 텐데. 날씨 탓인지 오래전 일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네.


오빠한테 말한 적이 있었던가, 하도 오래전이라 헷갈리네. 내가 중3 때였던 것 같아. 어느 날 아침 교실에 들어갔는데 나를 보자 애들이 난리를 치는 거야. 다짜고짜 너, 그 남자애 누구야? 내가 봤다니까, 언제부터 사귄 거야? 엄청 잘 생겼더라. 난 질문 쓰나미에 어리둥절했어. 난 남자애랑 다닌 적이 없는데...... 아, 오빠랑 둘이 있는 걸 봤나 보네, 친구들이 오해할 만도 해 안 닮았으니까, 가만히 있어야지 모른척하고.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탄로가 나고 말았어.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글쎄, 자기들을 소개해달라는 거야. 끝까지 모른 척할걸, 애들이 귀찮게 하더라고. 오빠는 그때 킹카였고 요즘 말로 하면 훈남, 얼짱이었던 거지. 오빠는 엄마를 닮았고. 아빠를 닮은 나한테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마 반만큼만 닮았으면, 하고 뒤끝을 흐리곤 했어. 기분 나쁘게. 학교 선생님들까지 그랬다니까. 엄마가 학교에 다녀간 날이면 선생님들은 너네 엄마 참 미인이시더라는 말을 했다니까. 본 대로 말한 것뿐인데 내가 뭐라겠어. 오빠도 엄마 못지않은 소리를 듣고 자랐잖아. 거 참 잘생겼네, 하고. 나도 오빠가 훈남인 건 인정!


생긴 건 달라도 성격은 비슷해서 우린 잘 맞았던 것 같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난 마음이 통하면 말 안 해도 안다고 생각했었어. 어린 마음에 착각했던 거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는데 말이야.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지, 진심을 파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어. 그걸 알기까지 부딪히고 깎이고 아파해야 했지. 오빠하고 내가 같다고 느낀 건 타고난 기질이 비슷해서였을 거야.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하며 까탈스러운 거지. 난 남들하고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이런 부류가 5명 중의 한 명 꼴인 HSP (High Sensitivity Person)라는 걸 알게 되었어.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먹고 푹 자고 자기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지. 어떤 때는 결함이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감수성이 풍부하고 높은 공감력을 가졌다는 장점도 있잖아. 노력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 영역이지. 오빠는 어땠어? 어쩌면 우리는 같은 기질이라 우리하고 다른 엄마의 외향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이 우리를 결속시켰는지도 몰라. 엄마하고 우리는 결이 달랐어. 난 오빠가 보였고 오빠는 내가 보였지만 엄마는 우리를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아. 그나마 아버지는 우리 쪽에 가까웠지.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까 자식하고 결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더라고. 오빠는 애가 하나라서 잘 모르겠지만 난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자식 간의 궁합이 있다는 말이 납득이 가. 동갑내기 준이와 우리 훈이를 봐도 그렇잖아. 오빠하고 나랑 달랐지. 오빠가 화초를 가꾸고 주말이면 준이를 데리고 캠핑을 다닌 것도, 내가 애들 데리고 뒷산에 다닌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 애들 키우는 것도 부모의 기질과 태도에 따라 다르더라고. 우리는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곳을 피해 한적한 장소를 주로 갔잖아. 시끌벅적한 놀이동산보다 뒷산이 좋고 마트보다 동네 시장 구경 다녔던 것만 해도. 그런데 준이하고 훈이는 외향적이라 사람들 북적대고 흥이 나는 곳을 좋아했지. 훈이가 어렸을 때라 그런 게겠지 했는데 태생적으로 그런 기질을 타고 난 거였더라고.


애들 어릴 때는 오빠네 자주 가곤 했지. 준이랑 훈이가 이산가족 상봉하듯 만나고 헤어질 때 영영 이별하듯 슬퍼했잖아. 어느 날인가 삼촌집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오는데, 뒷좌석에 앉은 애들이 운전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이러더라고. "삼촌이 엄마오빠니까 돈 좀 달라고 해, 오빠가 부자니까." 저희들 눈에 삼촌은 부자로 보였던 거야. 삼촌이 낚시터, 마트, 패밀리 레스토랑, 해수욕장도 데려다주고 맛있는 거 사주니까 그랬겠지. 훈이아빠 공부가 길어져 나는 주말과부였고 독박육아에 지쳐있었을 때라 오빠가 애들 데리고 오라고 하면 숨통이 트이곤 했어. 그때가 제일 힘들때였어서 새언니랑 오빠의 배려와 환대가 얼마나 고맙던지. 그러고 보니 고마운 것에 대해 표현하지 못하고 넘어간 게 한두 개가 아니었네.


세월이 흘러 그때 그랬던 애들이 이제, 때 우리 나이가 되었어.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오를 때면 아득하고 아쉽고 그리워. 외삼촌이 떠났지만 나처럼 애들도 불현듯 오래전 일들이 떠오르는가 봐. 아이들한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오빠를 보면 위안이 돼.


비가 계속 오려나 봐, 이제 나가봐야 해서 편지는 여기서 줄일게. 번에 하겠다고 했던 훈이 이야기는 또 미뤄야겠네.


오빠,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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