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엄마네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

보내지 않은 편지 7

by 맘달

오빠, 아버지 기일이라 엄마한테 갔었어. 엄마네 성당에 나란히 앉아 연미사를 드는데 오빠도 젠가 한번 그 성당 와본 적 있을 거야. 내 기억으로는 엄마 세례식 때였던 것 같은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이야. 엄마세례식이 있고 오래지 않아 오빠가 세상을 떴으니까 내 기억이 맞을 거야.


오빠는 대세라는 걸 받은 거야. 신부님이 베풀도록 되어있는 세례를 병원에 근무 중인 수녀님이 대신해 주셨어, 이런 걸 대세라고 해. 신부님을 대신해야 할 정도의 다급함이 전제된 거니까 '비상세례'라고 해야겠지. 오빠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대세라고 생각했어. 오빠한테 물어보지 않아 미안한데, 오빠가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금이라도 오빠가 잘했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오빠가 대세 받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르고 떠난 다음, 아버지도 오빠 뒤를 따라 개종하고 세례를 받으셨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친정식구들이 믿는 종교가 천주교가 된 거더라고.


"자매님,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머니 뵈러 오셨군요."이번에도 어느 신자분이 나를 알아보시고 먼저 인사를 하시는 거야. 매일미사 때 엄마 주변에 앉아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분들과 연령회 봉사자들이 나를 알아보는 데는 이유가 있어. 한창나이에 대세 받고 떠난 오빠에 이어 개종을 하신 아버지 때문이야. 오빠도 놀랬지, 아버지가 독실한 불교신자셨는데 아버지의 결정은 뜻밖이었어. 오빠장례 중에 연령회분들한테 감명을 받으셨던 것 같아.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개종을 하셨는데 유일한 천주교 신자인 내가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엄마네 성당 사람들이 엄마하고 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주임신부님을 잘 알기 때문이었어. 아버지 병자성사를 주러 오신 분이 20년 전 훈이가 첫 영성체를 하고 복사설 때 보좌로 계시던 분이셨어. 너무 놀라서 어머나, 어떻게, 20년 만에.... 이랬다니까. 내게 친근하게 먼저 인사를 건네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령회봉사자들이셔. 오빠 장례에 이어 아버지 장례까지 두 번의 장례를 맡아주셨기 때문에 알게 된 분들이야.


오빠가 홀연히 가고 아버지까지 떠난 뒤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사 드리러 성당에 가셔. 내가 엄마네 성당 미사시간에 맞춰 가면 언제든 엄마를 만날 수 있어. 나도 거기 가 있으면 마음이 편한데 엄마도 그러신가 봐. 우리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인 것같이 느껴지기도 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채.


엄마도 건강하게 잘 계시니까 염려 말고 오빠도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랑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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