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않은 편지 8
오빠, 아직 7월 초인데 서울 전역에 폭염경보가 내렸어. 올여름은 시작부터 덥더니 장마 건너뛰고 곧장 폭염과 열대야로 이어지고 있어. 점점 세거나 점점 빠르지 않고 느닷없어서 적응하기 힘드네. 오빠의 죽음도 비슷했어. '점점'이란 것도 없고 어떤 조짐이나 예고조차 없이 갑작스러웠잖아. 오빠가 사무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홀연히 가버렸으니까. 예측불가한 삶을 살고 있어도 오빠의 돌연한 죽음은 충격이었어. 나뿐만 아니라 오빠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는 장마는 '장마전선이 남에서 북으로 우리나라를 훑고 지나가며 많은 비를 내리는 형태'여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 기상청에서는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을 예보하지 않은 지 꽤 됐고. 올해는 비가 없는 마른장마야. 게릴라성 호우가 잦아진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장맛비'는 없어. 오빠가 쓰러진 게 2011년 이맘때였어. 역대급 장마였어. 오빠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중환자실에 면회하러 갈 때마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던 기억이 나.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내 마음에 차오르는 눈물처럼 비가 퍼부었어. 산사태로 빗물과 토사가 순식간에 쏟아지는 장면이 연거푸 뉴스에 나왔어. 지반이 약해져 서초구 우면산의 흙과 돌, 나무 등이 빗물을 타고 흘러 남부순환로 아파트를 덮쳐 인명피해도 났었거든.
천재지변을 당한 사람들 속에 나도 끼어있었어. 물난리가 아니었을 뿐, 오빠의 갑작스러운 의식불명상태가 천재지변이 아니고 뭐겠어. 불가항력적으로 덮쳤으니. 그해 장마가 끝날 때쯤 오빠의 삶도 끝나고 말았던 거야. 동기간을 잃으면 수족을 잃는 것 같더라, 는 위로의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누군지 기억은 나지 않아. 겪어봐서 아는 걸까. 뇌사판정, 장기기증, 처음 치러보는 천주교식 장례까지 마친 헛헛한 마음을 아는 것 같은 말. 어느 쪽이든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된 '할반지통割半之痛' 그 말을 실감하게 된 것은 요란하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부터였어. 그때가 되어서야 오빠가 없다는 게 실감 나고 빈자리가 커다랗게 드러났어.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했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오빠가 끊이지 않는 경조사며 제사며.... 챙기며 사느라 애쓴 흔적이 보였어. 오빠, 정말 고생 많았어. 오빠의 빈자리를 난 채울 수가 없어서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마음먹었어. 오빠처럼 할 수도 없지만 오빠처럼 하지 않겠노라고. 오빠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오빠가 자신을 위해 한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솔직히 놀랬어. 그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오빠 정말 바보야, 바보! 마흔아홉의 오빠가 제대로 해외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었더라고. 오빠가 늘 끼고 다니던 다이어리 있었잖아. 그걸 펼쳤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다음장을 넘길 수가 없었어. 꼼꼼하게 환갑 이후의 삶을 꿈꾼 자투리 메모, 평수 늘려간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간 흔적, 단정한 글씨체로 적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 난 오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오빠처럼 희생하며 살지 않을 거야, 내 속에서 그런 말이 마구마구 올라왔어. 오빠가 떠나면서 내게 남겨준 교훈이고 가르침이야.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로 살아!
오빠가 종갓집 장손이라는 역할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우리 원가족의 압력, 나도 잘 알아. 거역하기 힘든,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어서 오빠한테 뭐라고 할 수가가 없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야. 오빠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오빠가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내 지레짐작이라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오빠는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노라고 말할지도 몰라. 오빠가 수족관, 화초... 이런 것에 공을 들였고 퇴직 후 말년에 수족관을 차려볼까, 화원을 해볼까, 세컨드 하우스와 텃밭을 할까, 여러 가지로 말한 적 있었잖아. 순간 속으로 오빠한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어. 내가 아는 오빠는 조용하게 잘 노는 문학소년, 그래서 국문과도 가고 출판사에 취직도 하고 그랬던 거구나, 이제야 오빠의 전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드러나는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편지를 쓰면서 오빠는 짧지만 오빠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간 게 아닐까, 문득 내가 틀릴 수도 있겠다 싶어.
오빠는 내 기억 속 모습으로 남아있어. 미동조차 없는 중환자실에서의 모습이 아닌 배시시 웃는 키 큰 중년의 모습으로.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한 것은 신경 쓰지 마. 편지를 쓸 때마다 글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어. 마음처럼 글이 나오지 않는 건지 노트북 빈화면에 마음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한계인건지 늘 진심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느껴져. 오빠가 내 글의 행간을 헤아릴 것이라 믿어.
오빠는 어땠어, 살아보니까. 편지를 쓰고 나니 오빠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해졌어. 삶을 다 살아본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 사람에게 나침반이 될 텐데. 등불이 될 텐데.
오빠, 잘 지내. 다음에 또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