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짐과 복구 사이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우리 모두 영웅

by 맘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회고록을 읽었다. 책의 제목은 <엉망인 채 축제>였는데 주인공은 술라이커 저우아드, 프리스턴 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두 살의 여성이다. 책 앞부분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암진단을 받은 후 4년간의 투병기라고 할 수 있고 뒷부분은 완치판정을 받은 후 여행기라고 봐도 좋다. 단순히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 힘든 내용이었는데 내게는 투병과정 못지않게 생존 이후의 삶에 눈길이 갔다. 저자가 투병 중에 블로그와 연재 칼럼으로 소통하며 인연을 맺은 독자를 직접 만나러 24,140km에 이르는 먼 길을 홀로 달려간다는 것은 놀라웠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노란 자동차를 몰고. 400쪽이 넘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자꾸 큰아들이 생각났다. 질병으로 망가지고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술라이커 저우아드에게서 한줄기 희망을 끌어와 아들손에 쥐어주고 싶었다. 생존 확률 35%의 암과 회복률도 모르는 도박중독을 단순 비교할 수 없음에도 한사코 회복의 단서를 찾고 있는 나. 내 맘 같은 구절이 많았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은 쓰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는 말이다.


"나는 병으로 인해 자의식을 버리고 겸손해졌으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 자기도취적이던 스물두 살의 내가 암진단을 받았을 받지 않았더라면 수십 년이 지나서야 깨칠 수 있었을 교훈이다. '세상은 모든 사람을 쓰러뜨리지만 많은 이들이 쓰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 헤밍웨이의 이 말은 우리가 새롭게 얻은 교훈에 따라 살아갈 때에만 진실이 된다." 301쪽.


그녀는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부 없던 걸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녀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없었던 일로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만약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말하게 될까. 지금 같아서는 싹 다 지워버리고 싶다고 할 것 같은데, 술라이커 저우아드처럼 지울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도 싶다. 고통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일 텐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는지...... 아직까지는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소장도서

계속 책에서 희망의 줄을 끌어당겼다. 그중 최고의 문장은 298쪽에 있었는데 회복을 바라며 날마다 기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글귀다. "회복은 우리를 병에 걸리기 전 상태로 복원시켜 주는 편안한 자기 관리 같은 것이 아니다. 회복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결코 예전의 나를 되찾는 일도 아니다. 회복은 익숙한 내 모습을 영원히 버리고 새로 태어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들은 단도박을 하다가도 잘 나가던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과 비교가 되고 무너진 일상을 단번에 복구하고 싶기도 하겠지. 세상잣대로는 회복의 기나긴 여정을 걸어갈 수 없으니 자신의 처지를 인정고 근근이 살아도 괜찮은데, 회복활동에 집중하면 되는데, '남들처럼'이라는 잣대를 내려놔야 하는데, 환자에겐 병을 치료하는 게 급선무인데, 이런 말이 올라오지만 발설하지 못해 맴돌다 가라앉는다. 아직 젊어서 그런다.


부서짐과 복구 사이에서 도박충동과 금단현상, 불신, 관계단절, 습관성 거짓말로 망가진 삶을 복구하려는 협심자들은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부서진 자신을 일으켜 세워 복구한 그들의 회복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영웅신화로 들린다. 술라이커 저우아드가 난치병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 태어난 자신을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 아들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