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에 오염된 삶을 정화시키는 해독제, 갬아넌
책방에서 우연히 <손잡지 않고 살아난 생명은 없다>는 책제목을 본 순간 나는 ->손잡지 않고 회복된 중독은 없다 <-로 바꿔 읽었다. 단도박이나 회복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에. 도박충동을 다스리고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소관이지만, 자신의 의지나 간절함에 기댈 수만은 없다. 그게 말처럼 쉽다면, 그게 된다면 그건 중독이 아니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고 끌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GA(단도박모임)에서 중독성 도박문제를 가지고 있는 서로가 서로를 협심자協心者라고 부른다.
오늘은 단도박을 하며 영웅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단도박모임 GA(Gamblers- Anonymous익명의 회복 모임)은 도박을 끊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만 있으면 성별, 직업,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중독성 도박'이라는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도박을 끊고 회복의 삶을 살아가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서로 돕는, 말 그대로 자조自助모임이다. 먼저 시작된 알코올중독 자조모임 AA과 비슷한데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미혼모 자조모임, 사별자 자조모임, 만성질환자 자조모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단도박모임 GA는 익명성匿名性과 비밀보장이 생명이다. 그래야 GA모임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내용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모임을 떠났다가도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것 같다.
도박중독자 가족모임 갬아넌Gam-Anon
몇 해 전 남편의 병시중 들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환자를 보호하는 사람은 자기 돌봄에 취약해지는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몸과 마음이 상하기 쉽다. 내가 한동안 원인 모를 어깨통증에 시달렸을 때 의사들이 할 말이 없어서 하는 것 같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모임에 참석하는 가족 중에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처음 갬아넌 모임을 알려준 것도 같이 가자고 한 것도 큰아들이다. 가자마자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도박중독은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희망을 얻으려고 왔는데...... 게다가 특별한 처방도 없이 평생을 다니라고만 하니 그것도 부담이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곳이라 모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고 낯설고 어색했다. 핑곗거리를 찾아 적당히 가다 말다 한동안 발길을 끊었었다.
나름 애쓰며 해볼 수 있는 것 다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GA모임 외에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을. 가장 오래 하는 치료가 제대로 된 치료라는 말이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죽는 날까지 잠재우고 다스리고 다독거리려면, 혼자 할 수 없으니 여럿이 함께 하려면, 무조건 모임에 착실히 나가는 게 기본이구나!
도박중독자의 단도박모임 GA와 도박중독자 가족모임 갬아넌Gam-Anon 은 매주 한번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모임을 한다. 단도박모임 GA에서는 "방배 박 선생님" "사당 이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도박중독자 가족모임 갬아넌Gam-Anon에서는 "방배 최 여사님" "사당 권 여사 님" 이런 식으로 부른다. 살고 있는 동네를 앞자리에 넣고 뒷자라에 자신의 姓만 밝힌다. GA와 Gam-Anon의 책자와 진행방식이 다르고 서로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 게 규칙이라 내가 아는 건 가족모임에 관한 것뿐이다.
"지금부터 *월 *일 단도박 가족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로 모임이 시작되고 참석자들은 교본과 책자를 돌아가며 한 꼭지씩 읽는다. 그런 다음 "안녕하세요, 노원 김 여사입니다."라고 인사하며 근황토크나 읽었던 내용에 대해 소감을 나눈다. 다 듣고 나면 "감사합니다"라고 매듭을 짓는데 이때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거나 토를 달지 않고 듣기만 한다. 충조평판 없이 듣다가 모임이 끝난 후 따로 피드백을 하거나 의논을 하곤 한다. 그것도 본인이 원할 때만.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들이대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절대금지!
하루하루에 살자
알아 넌(Al-Anon)에서 발행한 책자를 갬아넌에 맞게 고쳐 쓴 책으로 1984년 시작될 때부터 사용해 왔다고 알고 있다. 모임이 없는 날에도 펼쳐놓고 읽으면 하루하루 살아낼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에 나는 이런 마음으로 읽고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나는 별개,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자.
내가 책임져야 할 것과 책임지지 않아야 할 것을 구별하자.
먼저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이자.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은 착각, 도박지옥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것은 교만이란 걸 명심하자.
중독과 회복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특단의 처방이 아니고, 같은 문제로 아픔을 겪는 사람끼리의 연대감이었다. 나는 연결됨, 보호받음, 안전함, 안정감에 안도할 수 있었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살면서 분노, 실망, 좌절, 두려움, 불신, 허탈감...... 등으로 쌓인 독소를 빼야 하는데 우리의 삶을 정화시키는 해독은 따로 또 같이하는 공동체라야 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되돌아보고 경험과 지혜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이 생겨난다.
힘이 나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