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않은 편지 10
오빠, 이번이 마지막이야. 편지 그만 쓰고 잘 살아볼게.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괴롭지 않게 사는 것 같긴 해. 되도록 가볍게 살려고. 생각은 줄이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더라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잖아. 그보다는 마음을 나누고 몸을 쓰는 일이 훨씬 생산적이고 유익한 것 같아.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고. 어린애처럼 검은 마음 하얀 마음으로 갈라 보면,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검은 마음이 하는 일일 거야. 계속 밝을 수만은 없지만 쓸데없는 생각에 끌려다니면서 어둡게 할 이유 또한 없으니까. 나는 오랫동안 어리석게 산 것 같아.
요즘 기도가 잦아졌어. 밝고 활동적으로 살아야 했던 대외용 가면을 벗었더니 참 편해.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고, 읽고 쓰다가 걷는 것, 가끔 사람 만나 수다 떠는 것, 다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사라졌어. 가만히 있으라는 압력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기도 하지만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 선택한 가만히 있음은 평온함으로 다가오더라.
일을 그만뒀더니 사람 만나는 일도 줄었어, 자연스럽게. 그래도 별 문제가 없더라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더라고. 그동안 훈이 일이 너무 커서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나 봐. 전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묻고 따졌다면 지금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고 신에게 물어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해. 그리고 신께 간구해. 훈이를 멀쩡하게 만들어달라고. 내 기도가 신께 전달될 수 있도록 오빠가 도와줘.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게 가능할 테니까.
쓰려고 앉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고 쓰면서부터 차곡차곡 정리가 되고 마침내 다 쓰고 나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져. 마법 같은 일이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언제든 불러도 되는 존재가 있다는 든든함, 내 삶의 무기야. 언제든 오빠, 하고 불러도 되는 거지?
잘 있어, 나도 잘 있을게. 그동안 내 얘기 들어줘서 정말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