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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pr 07. 2024

6회: 려 여왕의 아버지

배려로 가득한 고귀한 산들바람이 려 여왕의 얼굴 위로 흐른다.


병약한 아버지는 늘 신경질적이고 예민했다. 그는 왕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그의 잦은 고열과 기침에 대한 소문은 늘 괴기스러웠고, 자극적이었다. 왕비는 그의 오랜 투병에 지쳐 있었고, 그가 자신에게 어떤 고통을 나누어 주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어린 려는 아버지를 동정했다. 날카로운 아버지의 예민한 눈빛과 병약한 손을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차갑고 하얀 손이 두려운 적도 있었지만, 손의 차가움 때문에 아버지의 몸이 뜨거운 열에 불타고 있다고 느꼈다.


려는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어머니에게 마음속으로 분노했다. 아버지가 병과 싸우기 위해 온 힘을 내고 있다는 걸 모르는 어머니가 무자비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과 어리석음이라는 마성이 어머니의 두 눈을 뽑아버리는 꿈을 꾸었다.


려는 아버지의 선한 두 눈에 서린 슬픔을 바라보며, 굳건한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위로라는 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려는 매일매일 자신이 강해지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려의 마음과 지혜를 깊이 신뢰하고 있지만 입술을 열어 말로 내뱉지 않았다. 병약한 왕인 자신이 굳건한 후대 여왕에게 감히 무엇을 어떻게 조언한단 말인가. 아버지는 딸의 진심을 들여다보았고, 딸은 시들어가는 아버지의 깊은 생명력을 존경했다.


어느 날 왕은 려를 데리고 긴 잠행에 나섰다. 측근 몇 명만을 동행한 비밀스러운 길이었다. 려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아버지에게 묻지 않았다. 왕비조차 잠행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가 잠행에서 죽어서 돌아오기를 바랐다. 병약한 남편과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던 왕비라는 굴레를 땅바닥에 던져서 짓이기고 싶었다.


다만 왕은 죽음을 향해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으며, 그의 유일한 혈육인 딸에게 마지막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나의 병은 내게서 태어난 너를 늘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지만, 네 개의 숲은 너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다. 나는 네 개의 숲으로 들어간 후에 너를 지켜줄 것이다.

살아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죽어서야 너를 지켜줄 수 있는 아버지를 용서하렴."


병약한 왕은 자신의 가슴에 고인 더러운 웅덩이를 느끼며, 후대에 위대한 여왕이 될 려를 데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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