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과 직선의 조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의 구세주 사원
상트페트르부르그의 대표적인 피의 구세주 사원은 테트리스 궁전으로 알려진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과 일견 비슷해 보인다. 화려한 채색과 양파 모양의 기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성 바실리 성당은 아래 링크 참고.
피의 구세주 사원은 1800년대 말, 알렉산드로 1세가 서거한 장소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 사원이라고 한다. 넵스키 대로를 따라 내려가다 카잔 성당 쪽에서 돔 끄니끼 쪽 도로로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보에도바 운하 다리에서 이질적인 건물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직선의 운하 끝에 불쑥 튀어나오는 인상적인 사원 하나, 바로 피의 구세주 사원이다.
이 사원은 성 바실리는 보다 동화스러운 느낌이 덜하다. 색채의 대비가 상대적으로 적고 외관에 면과 각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반식은 경직된 성직자다가 허리 위부터 열정이 끓는 예술가가 된 것 같은 그런 건물이다. 피의 구세주 사원이라는 명칭 때문인지 좀 더 어둡고 숙연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다.
납작한 직사각형 같은 건물이라 앞쪽에서 본모습과 뒤쪽에서 본모습이 찍어놓은 듯이 비슷하다. 하지만 기둥 모양과 세부장식 등이 다르다. 위아래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다른 그림 찾기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한가운데의 성화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00년대 말에 세워졌다고 사원 내부는 천정을 포함한 벽면 전체(!)가 모자이크화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스러움과 유럽스러움이 짬뽕되고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한다. 굳이 선택하라면 스코틀랜드 성당보다는 이스탄불의 이슬람 사원 쪽에 가까운 느낌이다. 러시아 정교회 특유의 느낌이 강한 장식적 요소와 만나면서 화려함의 끝을 보여준다. 실내로 들어가면 외부에서 보는 화려함과는 또 다른 화려한 공간이 펼쳐진다.
바닥부터, 기둥, 천장까지 반복되는 패턴 장식은 같은 것이 하나 없는데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거나 조잡해 보이지 않고 종교화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화려하고 빛나다 보니 금욕적인 종교적 소재들이 종종 퇴폐적으로 보일 정도다. 우아하거나 절제되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음이다. 종교화에서 보통 나타나지 않는 풍경화스러운 표현이 있길래 '인물이 없을 리가 없다'싶어 찾아보니 저 위쪽에 천사가 난다. 뭔가 능청스럽다.
고상함과 우아함을 팔아서라도 아름다움을 사겠다고 웅변하는 듯한 압도적인 탐미주의가 사원의 탈을 쓰고 얌전히 앉아있는 느낌의 사원이었다. 피의 구세주 사원은 어딘지 모르게 이교도의 느낌이 난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로 아시아적이다.
의외로 마음에 드는 곳이라 예상보다 오래 머물렀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역시 그런 거다. 시계를 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머물 수 있는 것.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의 늦은 저녁에 들어오는 빛으로 보는 사원도 아름답다는 전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