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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Sep 05. 2016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모스크바 붉은 광장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 그리고 또 그 도시의 심장이 붉은 광장이다. 상징적이고 역사적이며 실용적인 장소로서 굳이 서울과 비교하자면 광화문 광장 같은 곳이다. 아니, 써놓고 나서 생각해보니 광화문 광장과의 공통점은 광장 옆(앞)에 궁이 있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붉은 광장은 훨씬 복잡한 의미를 가진 기묘하고 매력적인 장소다. 그중에 가장 묘했던 것은 '레닌 묘'였다. 


이 곳은 늘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당연하다. 붉은 광장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역사적 건물과 박물관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스크바에 머무른 5일 중 3일은 붉은 광장이나 광장 주변을 돌았다. 광장은 꽤 넓고 긴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면과 그 사면을 함께하는 건물과 거리는 짧은 글에 다 언급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붉은 광장 남쪽 방향, 가운데가 성 바실리 성당이다. 
붉은 광장 북쪽 방향

일단 붉은 광장 초입에는 부활의 문이라는 쌍둥이 첨탑 같은 문이 있다. 이 문과 또 하나의 길을 통해 광장으로 드나을 수 있지만  레닌 묘가 공개되는 시간에는 부활의 문을 통해서만 나가도록 통제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붉은 광장의 남동쪽 방향에는 광장보다 열 배보다 더 넓을 크렘린궁이 있다. 광장 광장 한쪽의 성곽 너머에 크렘린궁이 있어 광장에서 아름다운 성곽과 스파스키아 망루 등이 보인다.  

성곽 안의 크렘린 궁은 따로 포스팅했다. 

그리고 남쪽 방향에는 테트리스 성으로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이 있다. 이 것도 별도 포스팅. 

그리고 연꽃을 연상시키는 지붕의 카잔 성당이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독특한 미감의 성당인데 정오가 되자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종탑을 올려다보며 구경하길래 나도 올려다봤다. 한 노인이 드럼을 치듯 발과 손을 이용하여 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소리와 리듬에 한동안 넋을 놓고 보았다. 

카잔 성당 옆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성곽 안의 크렘린 궁을 제외하면 가장 화려하고 큰 건물은 굼 백화점 일 것이다. 광장에 뜬금없이 왜 백화점인가 싶었는데 무려 1983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밖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내부도 넓고 화려하다. 

굼백화점

굼 백화점 바로 건너편에 그 유명한 레닌의 묘가 있다. 레닌의 시신은 1924년 사망 후 냉동 보관되었으며 그 후 방부 처리되어 현재까지도 차가운 유리관 안에서 '전시' 되고 있다. 이렇게 전시되고 있는 레닌 시신의 누적 참배객은 1천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레닌묘 입구. 저 검은 문 안쪽은 냉장고마냥 차다

고작 천만인가, 싶었지만 직접 도전해보니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묘의 공개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줄을 서야 했다. 나도 첫날 이미 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다. 둘째 날, 오픈되기도 전부터 줄 섰지만 타오르는 땡볕 아래 한 시간을 기다렸다. 공개 시간이 주 4일, 하루에 3시간이니 하루 1~2천 명도 들어가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레닌 묘로 들어가기 위해 수백미터 늘어선 줄

내 앞의 십 대 소녀는 일사병으로 쓰러지더니 다시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일어났다. 머리에 찬 생수를 뿌리고 다시 줄을 섰다. 그렇게 긴 줄을 서서 보안검색기 통과하고 가방 검사당하고, 경찰인지 군인인지 모를 제복의 사람들이 거의 미터 단위로 서 있는 묘에 들어갔다. 냉장고처럼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밀랍인형처럼 누워있는 레닌이 있었다. 생각보다 더 왜소하고 창백했다.

북한 사람들로 추정되는 동양인들이 묘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도 목격했다. 관광지가 되어버린 레닌의 묘를 3분 만에 돌아 나오며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저 기나긴 줄은 선 다양한 국적의 남녀노소들은 각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광장 초입에 장엄하게 서 있는 두 개의 붉은 사각형 건물이 각각 조국 전쟁박물관과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두 박물관도 포스팅하고 싶지만 벅차서 포기했다.  조국 전쟁박물관에서는 러시아에서 나폴레옹이 한국에서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존재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전쟁하는 건 사병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것도. 


국립 역사박물관도 깔끔하고 나쁘지 않았지만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상태여서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다. 로비 천장과 기둥이 예뻤다(사진)는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적인 것이 뭔지 잘 모르지만 꼽아야 한다면 이 기둥이 들어선 로비를 대표적인 이미지로 꼽고 싶다. 화려하고, 우아하다. 

일정이 짧다면 두 박물관은 뛰어넘고 성 바실리 성당과 카잔 성당 내부를 돌아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아래 두 사진은 붉은 광장에서 근처라 도보로 5~10분 내에 위치한 루반카 광장과 혁명 광장이다. 레닌묘 얘기 나온 김에 모스크바의 공산 혁명 흔적을 정리해둔다. 아래 왼쪽 사진은 KGB 비밀 본부였던 곳. 냉전시대 첩보전의 상징이자 한때 할리우드 첩보물의 필수 등장 요소였던 KGB. 이 본부 건물은 보험사로 위장하였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에서 고문 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른쪽의 막스 동상은 인근 혁명광장.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난 못 읽는다). 

붉은 광장은 짧은 일정의 여행자에게는 모스크바 관광의 다이제스트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당과 박물관, 궁, 백화점까지 제대로 돌아보려면 상당한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 줄을 서야 하는 경우들도 있고. 그러니 꼭 입장하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하고 일정을 짜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는 5일 중 거의 3일을 붉은 광장 주변에 투자했는데 수박 겉핱기만 한 기분이다. 


붉은 광장과 그 주변은 글로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시각 정보와 감정, 기억을 남겼다. 아마 두세 주가 지나면 대부분 잊게 될 것이고, 일 년만 지나면 여기 남긴 글과 사진 정도의 기억이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광장에 들어서며 숨을 들이마셨던 그 순간의 감격은 그 보다는 좀 더 오래갈 것 같다. 넓고 긴 광장의 한 끝에 바실리 성장의 실루엣이 보이던 첫 순간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모스크바에 왔구나!" 


그 느낌만은 오래 기억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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