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밀도 Dec 10. 2023

꼰대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는 아닐 것이라는 판타지.

꼰대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료가 상사의 꼰대스러운 행동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면,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절대로 그 나이가 되어도 꼰대스럽지 않은, 진짜 어른스러운 사람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이 있었다.


최근의 일이었다. 신입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의 임원 보고를 앞두고 다 같이 일정을 맞추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일정을 어렵게 확정했는데 CEO보고를 임원이 하게 됐고, 임원보고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정 변경을 팀원들과 논의하자, 신입 A는 그날 재택 근무하는 날이므로 보고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긴 했지만 임원 보고인데 자신의 재택근무가 우선이라는 태도에 나는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신입 때는 임원 보고 일정이 바뀌어서 여름휴가를 취소한 적도 있는데…’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네…’라는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오늘 아침 도착한 최신 뉴스에 ‘꼰대’ 관련 기사를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 그 말을 내뱉었으면 오늘 누군가의 안주거리가 될 뻔했던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1208136600003?input=1195m


“꼰대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는 굳이 안 해도 될 조언이나 충고를 하고(57.8%, 중복응답), '요즘 젊은 애들은~'(50.7%),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49.5%)이라는 말로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후배 세대를 판단하는 점이 꼽혔다.”
“고집이 세고(58.7%), 말이 안 통하는(53.7%) 사람을 떠올리거나, 참견하기 좋아한다(44.2%)는 이미지를 연상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다수를 차지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거의 일치했다. 아찔함과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과 종이 한창 차이 같았기 때문이다.


1)    고집이 세고 ---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 수 있다.

2)    말이 안 통하는 --- 대안이 없고 방법이 하나일 때도 있지 않은가?

3)    참견하기 좋아하는 --- 마음 좋은 오지라퍼들도 있지 않나?


책임감이 있고, 오랜 세월의 경험과 노력으로 자기 경험이 생겼으며, 남들이 먼 길 돌아가지 않게 조언을 해주려는 사람이 자칫 잘못하면 꼰대로 분류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꼰대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는 프로젝트를 책임감 있게 끌고 나가야 하고 중요한 보고를 마쳐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는가? 좋은 선배도 좋지만 월급쟁이의 본분을 다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앞섰다.


가끔씩 꼰대 같다고 비난했던 선배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프로젝트를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끄는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하는 일들도 많고 그러다 보면 융통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는 상황도 만나던 것이리라.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다.) 누구나 사회생활의 시간이 쌓이면서 책임의 무게가 달라질 것이고 그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 그렇다고 지금 꼰대의 길을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꼰대’라는 개념을 조금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그들이 꼰대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지만 나는 아직 꼰대로 진입하는 않는 듯 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것 또한 직장생활 판타지일까? 이미 신입들은 나를 꼰대로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02화 ‘Fair’한 평가는 있다?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