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질 때쯤 회사에서는 평가시즌이 먼저 찾아온다. 오늘도 회사 익명 게시판에 새로운 글들이 한가득 올라왔다. 매년 글쓴이만 달라질 뿐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만난다. 저마다 한 해 동안 고생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열심히 일했지만 상위 고과를 받지 못했으며, 앞으로는 더 이상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비슷한 처지라며 서로 위로하기도 하고, 자신이 더 최악이라며 경쟁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저는 작년에 선배한테 고과를 양보했는데, 상사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네요.”
“이 부서에 저만큼 일한 사람은 없습니다. 대체 누가 상위 고과를 가져갔나요?”
“더 이상 이렇게 일하지 않겠습니다. 대충대충 해야죠.”
이런 일은 비단 한국 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많은 인사 전문가들과 함께 동료 평가를 도입했던 구글 또한 최근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되면서 전면적으로 평가제도를 다시 개편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507011900091
매번 발생하는 노이즈에도 평가 체계는 조직의 숙명이다. 성과를 근거로 직원들을 나열하고 포인트를 부여한다. 이를 기반으로 승진여부 및 연봉 등을 책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정한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조직에게는 항상 필요한 것이다. 평가=돈이므로 월급쟁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완벽한 AI가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100프로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인간에게는 연민, 희로애락의 인지상정이라는 변수가 있지 않은가? 일을 잘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조직이나 리더가 흔들리고 힘들 때 옆에서 감정적으로 위로해 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치우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애초에 평가가 fair 하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보다는 그 시즌의 자신의 행운을 믿는 편이 더 속 편하다. (평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원래 인간사회는 평등하지 않다. 평등은 판타지다. 그러니 평등을 다루는 영화와 소설들이 나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매년 평가가 공정한 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올해의 평가는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믿을 것이다. 올해 익명 게시판에 불평을 토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년에 좋은 고과를 받는다면 그들의 태도가 단박에 바뀐다는 데에 나는 베팅을 할 수 있다.
조직 내에서의 평가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평가가 좋지 않을 때 조금은 ‘쿨하게’ 넘길 수 있게 된다. 15년 차 장기 근속자는 평가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감이 온 해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보너스+연봉 상승분’을 만회하도록 투자에 조금 더 집중한다. 회사나 상사의 상위 고과대신 스스로 만들어 주는 보너스! 이 또한 나쁘지 않다. 필자는 오늘도 ‘해외주식으로 부자 되기’ 책을 빌리러 간다. 올해는 나에게 보너스를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역시 공정하지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