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은 매우 성실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찾아왔다. 여전히 꿈속의 나는 묶여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저 다섯 개의 문은 같은 위치에서 덜컹거렸다. 무섭고 두려운 감정보다 갑갑하고 숨이 막혔다. 이제 꿈속 어둠에는 익숙해졌다. 매일 밤 꿈에서 보는 이 좁은 공간이 내방보다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체 왜 나를 묶어 놓은 건지, 저 문들은 왜 나를 향해 저리도 덜컹거리는지.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데 실마리가 되지는 않을지 궁금증도 일었다. 손을 뻗어 문을 열어 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닿지 않았다. 무리해서라도 나무줄기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피를 토하는 내 모습을 다시 볼 용기는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꿈속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빠는 나를 볼 때마다 AI처럼 늘 같은 말을 덧붙였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 끔찍한 기억은 없는 편이 낫지.”
하지만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나는 가끔 아빠와 권 비서님을 통해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나의 2년의 기억을 조각보처럼 이어보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이사장과 친분이 있었고 가끔 이사장실을 직접 방문해서 미팅했다. VIP의 신분으로 학교에 방문했기에 아빠의 이동이 매끄러울 수 있도록 권 비서님은 경비아저씨와 연락을 하는 사이였다. 아빠는 주차장에서부터 이사장실까지 매끄럽게 이동을 하고, 미팅을 마치면 매끄럽게 권 비서님이 운전하는 차로 쑥 미끄러져 들어가야 했다. 중간에 변수가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를 처음 발견한 것은 경비아저씨였다. 경비아저씨는 처음에 분리 수거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끈적하게 얼굴에 들러붙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단번에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교복에 있는 이름표를 보고 내가 VIP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 경비아저씨는 곧바로 권 비서님에게 연락했고 마침 함께 차로 이동 중이었던 아빠는 응급실에 제일 먼저 달려올 수 있었다. 나의 몰골을 적나라하게 마주했던 아빠였기에 당연히 그런 기억 따위는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시 머리의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에 들어갔다. 상처의 위치로 추측해보건대, 단단한 무기로 뒤에서 머리를 가격당했을 거라고 했다. 역시 등 뒤에서 공격당했다. 뒤에서 머리를 가격당하고 바로 쓰러지는 바람에 범인의 얼굴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어디서 공격당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범인은 쓰러진 나를 끌어서 분리수거장으로 옮겨놓았다. 분리수거장 입구부터 내가 쓰러져 있던 바닥까지 그려진 피가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치사한 새끼였다. 뒤에서 머리를 가격하는 새끼는 당연히 치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겁이 많은 새끼일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내 앞에서 공격하지 못하고 뒤에서 가격했던 비겁한 자식. 나보다 더 약한 초식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괴롭히던 육식동물 중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이었을까? 이 사고로 나의 학교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적응자, 왕따, 학교 폭력 피해자. 그보다는 그저 초식동물인 편이 나았다. 저 별명들이 수치스러웠다.
악몽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워진 기억을 영원히 궁금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앞에 덜컹거리는 문이 매일 밤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악몽이 매일 밤 찾아온다는 것만 제외하면 나의 모든 삶은 안정되고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학교는 나에게 늘 불편한 곳이었는데 가지 않을 명분이 있다는 게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다만 엄마가 없어서 나는 공허했다. 공허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늘 불안정했던 엄마가 없으니, 집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던 언쟁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픔과는 별개로 고요한 호수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내 일상에 악몽은 의식하지 못했던 심연의 존재를 자각하게 했다. 심연을 둘러싼 짙은 안개를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중이었다. 안개와 저 악몽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매일 답답한 악몽에 시달리니 명확해지고 싶은 강박감이 생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그 기억이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안개를 걷어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조금씩 강렬해지고 있었다. 박하사탕 맛만큼이나 뚜렷해지고 싶었다.
오늘은 오전 수업에 빠지고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나는 병원을 나서기 전에 식탁에 있는 유리병에 시선을 빼앗겼다. 항상 하얀 박하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병이 우리 집 식탁에는 놓여 있었다. 엄마가 떠나기 전 가득 채워놓았는지 아직도 동그란 사탕들이 가득했다. 엄마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오도독 씹어 먹었던 박하사탕 두 개를 나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근래 내 인생에서 가장 시원하고 확실한 것이었다.
셋째 주 목요일이 정기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곰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고 검정고시 학원은 규모가 작은 학교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우관계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나를 도와주었던 워커와 마주치면 묵례로 인사할 뿐 별다른 관계는 맺지 않았다. 가끔 그의 패션이나 동태를 곁눈질로 살필 뿐이었다. 첫날 워커를 만나러 왔던 여자를 그 뒤로도 로비에서 몇 번 보았다. 둘은 건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권 비서님을 만나러 갔기 때문에 그 모습이 늘 마지막이었다. 수업 시간에 출석 체크 덕분에 워커의 이름이 동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동제. 동제도 나의 이름을 알았겠지. 열아홉 살 자퇴생 박정민. 다른 친밀감을 형성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아는 사이가 되었다.
동제는 늘 면도가 잘 되어 있는 매끈한 얼굴에 컬러 조합이 세련된 스타일링으로 학원에 왔다. 그는 첫인상보다 성실했다. 오히려 수업 시간에 불성실한 것은 나였다. 덜컹거리는 문에 시달리느라 늘 잠이 부족했다. 수업 시간에 졸다가 침이 흘러 그 차가운 감촉에 놀라서 깨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부족한 잠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조금씩 쪼개어 잤다. 권 비서님한테 차에서 쪽잠을 자는 내가 곤히 잠들어 있어서 깨우기 미안해도 괴로워하는 표정이 발견되거나 신음을 내면 가차 없이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담당 의사는 수척해진 몰골의 나를 보고 현재 상태를 먼저 알아보았다. 체중은 이미 3킬로나 빠져 있었다. 의식이 없던 3개월 동안 링거를 통해서만 음식을 섭취했기에 내가 원하던 적당히 마른 몸매가 되어 깨어났는데, 지금은 볼이 푹 패이고 눈 밑이 시커멓다. 머리카락이 한 달 동안 조금 더 길었다는 점 빼고는 마음에 드는 점이 없었다. 초췌한 모습을 보기 싫어서 거울은 거의 보지 않았다. 나는 상담 시간에 조심스럽게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번 상담한 이후로 악몽을 꾸기 시작했어요. 늘 같은 꿈이에요. 저는 늘 묶여져 있고 제 앞에는 몇 개의 문이 저를 향해 덜컹거려요. 왠지 열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손이 닿질 않아요.”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을 꾸는 건가요?”
“네, 단 하루도 빠짐없어요. 가끔 차에서 쪽잠을 잘 때 빼고는 밤마다 어김없이 그 꿈이 저를 찾아와요. 그 꿈이 무섭다기보다 그 문을 열고 싶어서 괴로워요. 그 문을 열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거든요.”
“정민 군이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을 통해서 들은 내용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의문도 있을 거고요. 몸이 피로하면 점점 더 악몽이 선명해지고 문을 열고 싶다는 강박감이 생길 수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강박감이 악몽을 불러오는 것일 수도 있고요. 오늘은 제가 가벼운 수면유도제를 처방해줄 거예요. 일단 일주일 정도 복용하면서 효과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악몽을 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자기 전에 꼭 챙겨 먹도록 해요. 다음 상담은 10월이 아니라 이주 뒤주로 잡을게요. 호전이 있는지 살펴볼게요.”
약이라니, 내가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악몽이 기억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과 단서를 얻고 싶었고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을 꺼내었는데, 담당 의사는 악몽을 사라지게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약은 처방 받았지만, 처방 받은 약을 가방에 깊숙이 쑤셔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