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짧고 명료한 설명에 의하면, 나는 자퇴생이다. 나의 자퇴를 결정한 사람은 아마도 아빠일 것이다. 아니 아빠라고 확신했다. 아빠는 요즘 내 컨디션이 많이 회복된 것 같다며 검정고시 학원의 개강일을 통보했다.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나를 새로운 사회로 떠미는 아빠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퇴했다는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처참한 몰골로 발견되었고 고통받은 것은 나였는데, 그런 내가 가해자를 피해서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피해자가 떠나야 하는 현실이 엿 같았다. 가해자들이 버젓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가 그들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려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나는 어차피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내 기억에는 그들의 얼굴이 없었다. 게다가 나 같은 초식 동물에게 공격성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초식 동물들은 풀을 씹고 또 씹듯, 기억을 곱씹으며 참아야 했다. 나에게는 곱씹어볼 기억조차 없었다.
연이어 악몽을 꾼 터라 평소보다 기력이 많이 달렸다. 새로운 사회활동의 소굴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마치 독수리 어미가 절벽에서 새끼 독수리의 등을 밀어 떨어뜨리는 것처럼 아빠가 나를 절벽 앞에서 떠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평소와 똑같은 패턴으로 면도를 했는데 손의 완급조절에 실패하여 얼굴에 생채기를 냈다. 서랍을 뒤져 작은 반창고를 붙였다. 턱과 볼 사이에 대각선으로 붙어 있는 피부색 반창고와 아직은 터무니없이 짧은 머리가 어딘지 모르게 불량스러워 보였다. 처음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비집고 나온 웃음에 당황했지만,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육식동물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검정고시학원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일 테지만 그래도 이미지 메이킹을 어느 정도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얕잡아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빠가 등록해 준 검정고시 학원은 사람들이 넘치는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빠다운 선택이었다. 가장 좋은 시설, 가장 좋은 커리큘럼, 가장 좋은 강사들이 있는 곳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아빠에게 지금 중요한 목표는 나를 고졸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지만 나를 환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큰 두려움은 길에서 나를 아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검정고시 학원은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번화가에 있고, 괜찮은 입시학원도 즐비해 있어서 고등학생들의 밀집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가해자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리라. 그들이 나를 발견하고 살갑게 다가와도 나는 그들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인생을 순식간에 변화시켜 버린 그 자식 앞에서 속도 없이 웃어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폭력만큼이나 더 끔찍한 일이었다. 그들은 실없이 웃는 나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껴버릴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폭력으로 기억까지 잃었던 내가 멀쩡한 모습으로 걸었다는 것을 보고 안도할 것이고, 내가 그들을 향해 웃어주면 죄를 용서받았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 일단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말아야 했다.
내가 취한 작전은 챙이 큰 벙거지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커다란 모자가 달린 옷이 필요했다. 아빠가 학원의 위치와 개강 일자를 통보한 날부터 나는 학원으로 향하는 길을 지속해서 상상했고, 권 비서님한테 부탁해서 내가 원하는 옷과 모자도 미리 사놓았다. 나갈 채비를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야생 곰 한 마리를 보는 듯했다. 곰처럼 보이는 것에 스스로 흡족했다. 곰은 완전한 육식동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곰은 사자나 호랑이에 견줄 수 있는 잡식동물이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동물의 제왕으로 대접받아 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곰의 상징이 꽤 매력적이다. 단군신화만 봐도 곰은 인내심이 있는 동물로 그려지고 결국 인간이 되어 왕과 결혼하는 영광도 얻지 않는가? 아, 곰같이 보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육식이 될 수 없다면 곰 같은 잡식이 되리라. 나는 새로 태어나기로 했다.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에서 100일을 견뎌낼 것이다. 나는 평화로움 속에서 살아갈 테지만, 누군가가 나를 자극한다면 다시는 초식동물처럼 굴지 않을 것이다.
검은 벙거지 아래로 늘어지는 그림자 덕분에 눈이 움푹 꺼져 보였고, 그 밑으로 내 얼굴에서 가장 자신 있는 코가 얇은 입술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보였다. 고개를 측면으로 돌리자 얼굴에 밀착해 있는 반창고가 마치 액세서리처럼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철을 타고 세 정거장 거리였지만,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는 아빠에게 권 비서님이 픽업해 주면 좋겠다고 말해두었다. 아빠는 흔쾌히 허락했다. 권 비서님이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근무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고, 나를 데려다주면서 커피 한잔 정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서로에게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전철역 바로 출구에 위치한 ‘진성학원’이었다. 최근 리모델링한 건물에 여러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실내장식으로 카페 감성처럼 강의실을 꾸며 놓았다. 돈만 조금 추가하면 개인 학습 공간도 대여해 주었다. 이곳은 나 같은 자퇴생보다는 해외 유학을 하다가 한국 대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원 로비에 들어서자 리셉션에는 더듬더듬 한국말로 데스크 직원에게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 보였다. 쌍방으로 답답한 표정을 보면서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나의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 일부러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칠판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시선이 덜 가는 쪽을 골라 앉았다. 무사히 첫 외출에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는 악몽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졸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자꾸 눈이 감겼다.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에는 꿈을 꾸지 않겠지 걱정을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덜컹덜컹.
제길, 다시 같은 악몽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이 악몽의 정체는 뭐지? 매번 판에 박은 듯 같은 공간을 마주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묶인 채 덜컹거리는 문을 바라봐야 하는 같은 상황이었다. 책상에 엎드린 것을 후회했다. 졸려도 눈을 감지 말았어야 했다. 팔을 교차해서 베개 삼아 얼굴을 올려 두었는데, 꿈속에서도 내 팔은 교차한 상태에서 나무줄기들에 칭칭 감겨 있다. 오늘은 손을 뻗을 수조차 없었다. 몸이 더욱 빈틈이 없게 묶여서 손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문들은 열어달라고 요동을 쳤다. 공포와 갑갑함이 배가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눈으로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칭칭 감겨 있는 내 몸에 땀이 흥건해지고 있었다. 뛰쳐나가고 싶다. 어제처럼 나를 흔들어 깨워줄 도우미 아주머니도 없는데,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막막했다. 가까스로 영화에서 주워들은 주기도문을 어설프게 기억해 내고는 중얼거려 보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든 누구든, 나를 제발 악에서 구하소서. 제발. 그 누구라도 나를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주소서. 할렐루야. 샬롬. 아멘!!!”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이 90도로 회전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통증이 느껴져 눈이 번쩍 뜨였다. 눈앞에는 검은 고무가 끼워진 의자 다리의 줄지은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앉아있던 의자와 책상도 함께 바닥에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꿈속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약간의 발작을 일으켰다.
엉킨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키려는데 두꺼운 굽의 검은 워커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몸이 웅크려졌다. 아직 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나 보다. 검은 워커가 나를 힘으로 제압할 것만 같은 생각에 최대한 몸을 밀도 있게 만들었다. 그래야 맞아도 타격이 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맞을 준비를 하고 몸을 웅크린 상태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주먹 대신 질문이 날아 들어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일으켜 줄게요.”
생각지도 못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눈을 뜨니 워커의 주인이 나를 일으켜 주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는 악몽에서 벗어났고 현실로 돌아왔다. 순간 새우처럼 말려있던 내 모습에 수치감이 들었다. 서둘러 몸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 남자는 내 어깨를 부축해서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꿨나 봐요. 비명을 지르면서 옆으로 쓰러져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비명을 질렀나요?”
남자에게 질문을 던져놓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나를 도와준 남자와 나 외에는 교실에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 한 명에만 쪽 팔린 상황이니까 이 남자만 피해 다니면 된다. 남자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를 안심시키는 대답을 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없어요. 저만 봤어요. 아직 수업이 한참 남아서.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감사합니다. 좀 쪽 팔려서요.”
“쪽 팔리기는요, 졸다가 가위눌려서 담임이 때리는지도 몰랐던 적이 있어요. 잠을 못 참는 부류들이 있죠. 앞으로 수업 때 자주 볼 텐데 안면이나 트고 지내요.”
“아, 네 반갑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자퇴하고 시험 준비하러 왔어요."
“그럼 제가 한 살 형이네요. 저는 20살이에요. 사정이 있어서 졸업을 못하고 이제야 준비하려고 해요.”
“저도 사정이 있어서 자퇴했어요.”
“우리 모두 사정이 있죠 하하. 앞으로 검정고시 잘 준비해 봐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20살이 되면 사교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인가? 그의 말투에는 나와 다르게 사회성이 묻어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체격이 좋았다. 군화처럼 보이는 굽이 두툼한 검은 워커에 넉넉한 국방색 바지를 입었다. 빈티지 스타일 검은 점퍼를 입고 그 안에는 짙은 보라색의 후드 티가 포인트로 보였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짙고 어두운 색 사이로 보이는 보라색은 강렬했고 그를 특별하게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가 신고 있는 워커 덕분인지 키도 꽤 커 보였다. 체격이 좋은 그는 나처럼 이렇게 맞고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약간의 열등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쪽 팔린 비밀을 간직해 주는 사람이었고 나를 도와줬으니 가끔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20살이라면 건너 건너 가해자들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적다고 생각되어 안심도 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가 앉는 책상 바로 옆에 앉았다. 그를 의식하는 나와 다르게 그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이어폰을 꺼내어 음악을 들었다. 쉴 새 없이 연락이 오는 휴대전화를 붙잡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반면, 주머니 속 내 휴대전화는 고요했다. 그의 이름이 뭘까? 그는 나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당연히 나도 묻지 못했다. 음악을 듣고 있는 그를 방해해서 물어볼 만큼의 용기와 호기심은 없었다. 당분간 그를 워커로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