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밀도 Oct 27. 2024

1장. 기억(3)

나는 지난 2년간의 기억을 못 한다는 결함이 있었지만, 신체적으로는 금세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었다. 새로 고용된 가사 도우미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아직은 밖을 돌아다닌다거나 누군가를 만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사용하던 물건들은 존재를 감추었고 모든 것이 새로 준비되었다. 내가 사용하던 물건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했을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휴대전화, 새로운 PC, 새로운 옷, 그전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연락하거나 나를 찾아오는 친구는 없었다. 간병인한테도 슬며시 물어봤지만, 전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새로운 휴대폰에는 가사 도우미, 간병인, 아빠, 권 비서님 연락처 외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집에는 가끔 전문 트레이너가 와서 나에게 스트레칭을 알려줬다. 아빠는 몸이 건강해야 기억도 마음도 회복이 빨리 될 것이라고 했다. 강도가 높지 않은 운동으로 1시간을 채웠다. 하루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정기 검진 차 매주 병원을 들려야 했다. 이동할 때는 권 비서님이 나의 이동을 도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나는 마치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되었다. 집에 왕진을 왔던 의사가 나의 담당 교수였다. 병원에서 여러 차례 정밀 검사를 진행했지만, 뇌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당시 응급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를 회상하면, 이 정도의 회복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다만 2년의 기억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교수는 내가 3개월간 의식을 잃었던 것과, 지난 2년을 기억 못 하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클 것이라고 했다. 당분간 외과 치료보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며 다음 진료를 정신과로 옮겨서 잡아줬다. 심리적 고통이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누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치료를 해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내가 치료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했다.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다. 지금의 작은 생활 반경과 반복되는 일상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없다는 것이 갑갑함을 안겨줬다. 더는 내 곁에 없는 엄마에 대한 기억만큼은 다시 찾게 되길 간절히 원했다. 


정신과 진료를 보러 가는 길은 한결 마음이 편했다. 폭신한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나를 압박하는 무시무시한 기계도 없었다. 정답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정신과 담당 의사는 의식을 찾고 유일하게 편히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였다. 담당 의사는 엄마를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엄마와 나이도 비슷해 보였고, 내 또래의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내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성심성의껏 나에게 귀를 기울였다. 상담의 시작은 가장 먼 기억부터 데리고 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최초의 기억에는 엄마가 있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공원이 떠 올랐다. 엄마는 푸른 잔디밭에 서 있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엄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그녀의 표정을 해석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억 속에 나는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의 발치에는 손바닥만 한 매미의 사지가 다 사라진 채 몸통만 뒤집혀 있었다. 엄마는 어떻게 8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냐고 소리쳤다. 그 표정은 아빠와 싸울 때 엄마 얼굴에서 봤던 것이었다. 엄마는 실컷 소리치고 울고 나서야 나를 안아줬다. 나도 엄마를 꼭 앉았다. 상담을 하면서 그리운 엄마를 꺼내어 만날 수 있었다. 현실에서 엄마는 없었지만, 내 기억 곳곳에는 엄마가 있었다. 


여러 번 엄마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고 난 뒤, 담당 의사는 내 삶에서 가족 외의 관계에 관해 물었다. 그날 담당 의사는 친구에 관해 묻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친구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는 기억이 있는지 질문은 던졌다. 담당 의사의 질문에 가장 먼저 13살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도시에 이사 온 지 2년을 넘기고 있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오랜 시간 머물고 있었다. 안정감을 찾아가는 나와는 반대로 엄마는 2년이 채워질수록 불안해했다. 아빠는 세금을 이유로 2년마다 집을 옮겼기 때문에 지난 몇 번의 경험으로 엄마의 직감이 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2년을 넘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한 도시에서 2년 반을 살았다. 나에게는 2년 이상의 시간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야 나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돈으로 모아놓은 친구들이지만 2년 동안 같은 추억을 공유하다 보니 제법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적어도 상담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 내가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는 없었지만 작은 일탈에는 빠짐없이 초대되는 영예를 안았다. 나는 그들 중 가장 모범생이었고 항상 말끔하게 다녔기에 그들이 일탈할 때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주었다. 내가 같이 모인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자세히 묻지 않고 보내주었다. 그것이 내가 이 모임에서 필요한 가장 큰 이유였다. 하루는 그들이 어른들 눈을 피해 담배를 몰래 피우는 이벤트에 나를 끼어 주었다. 


“야, 엄마가 정민이 있다니까 뭐라고 하는지 알아? 이 새끼 반만이라도 따라가래. 유유상종이라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이냐고 하는데?”

“우리 엄마도 똑같이 말하던데. 야! 시발 정민아 너는 좋겠다.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집에서는 아니야. 약해 빠졌다고 욕먹어.”

“틀린 말은 아니네. 이 새끼가 좀 약해 빠지긴 했지. 자, 공통의 추억을 간직하는 의미해서 너도 한 번 피워봐.”

“난 괜찮아. 너네끼리 해. 다른 데서 비밀로 할게.”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냐? 다 같이 해야 나중에 걸려도 말맞추기도 쉬워. 이렇게 약해 빠진 모습 보이지 말고 한번 쭉 들이켜 봐."


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그룹 안에 남기 위해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의 독한 연기가 내코점막을 찌르고 눈을 쥐어짰다. 무리 중 한 명이 나에게 기특하다고 우리는 진짜 친구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어 주었다. 이런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면 몇 갑이고 더 피워도 좋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다 꺼내어 놓고 나자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수치심이 몰려왔다.


처음으로 실체화된 언어로 그때의 우리 관계를 설명했다. 실체화된 언어로 우리 사이를 설명할수록 내가 그들과 친구였다는 확신은 희미해져 갔다. 나는 그들을 친구라고 믿었는데, 그들의 시선으로 나를 봤을 때는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함께 한 친구들에게 결국 이용당하며 지냈다는 깨달음이 느닷없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친구가 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등신 같은 기분.


“정민군, 그 기억에 대한 느낌이 어떤가요? 왜 그 기억을 정민군이 처음으로 꺼내 놓았을까요?”

“모르겠어요. 그냥 친구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셔서 자연스럽게 그때가 떠올랐어요. 그래도 가장 친구 대접을 받았던 때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하고 나니까 불쾌한 느낌이 드네요. 그 애들한테 저는 친구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만 친구라고 착각했어요. 아마도 저를 기억조차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솔직한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마워요. 조금씩 기억을 꺼내서 바로 잡아 봅시다. 잘하고 있어요. 장시간 사람과 대화하는 데에도 문제없고 심리 상태도 안정적으로 보이니까 다른 사회적 활동들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오히려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담당 의사는 몇 가지 메모를 차트에 적고, 한 달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이제는 집에만 머무는 것보다는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전 02화 1장. 기억(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