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 시작된 것은 그날 밤부터였다. 평화롭던 나의 일상에 균열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누군가 수면제를 먹이고 재우는 것처럼 꿈 한번 꾸지 않고 매일 밤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양질의 수면생활을 하던 나에게 새로 생긴 불편한 변화였다. 그 날의 다른 점은 담당 의사와의 상담에서 나의 13살의 기억을 꺼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뿐이었다.
꿈속에서 눈을 떴을 때, 사방이 온통 어두웠다. 스산한 분위기에 바닥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주변을 둘러보자 다섯 개의 문이 닫혀있는 상태로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문을 열어 보려고 손을 뻗었지만, 손잡이가 없었다. 다섯 개의 문 안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손잡이는 없었지만 밀어서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문을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문을 열어보려는데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그제야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거친 나무줄기들이 몸통을 조이고 옭아매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면 그것들은 살아있는 독사처럼 위협적으로 나를 노려보고 더욱더 강하게 조여 왔다. 조금만 뻗으면 저 문에 손이 닿을 것 같았다. 저 문을 열면 잃어버린 2년의 기억이 돌아올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나무줄기에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나무줄기는 지능이 있는 것처럼 나의 몸짓에 반응했다. 내가 계속 포기하지 않자 화가 난 듯 있는 힘을 다해 나의 몸통을 강하게 조였다. 그 순간 우두둑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온몸에 진동했고, 내 입에서는 분수처럼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사방으로 퍼지는 핏줄기를 보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내 몸을 벌떡 일으키고 나서야 꿈인 것을 알았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창밖은 이미 날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의 악몽으로 일상의 균형이 한순간에 깨진 느낌이 들었다. 침대 옆에 있는 500mL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잠옷은 땀에 젖어 내 몸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샤워부터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나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강하게 틀어놓고 자신에게 물었다. 13살의 기억과 그 악몽이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동안 평온하게 지냈는데, 무엇이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버린 것일까? 파장을 일으킨 변수가 궁금했지만,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직 속단하지 말기로 했다. 단 한 번의 악몽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악몽 이야기는 당분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은 일부러 늦게까지 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전날에 꿈에서 마주한 경험이 너무 끔찍해서 최대한 꿈을 피하고 싶었다. 피곤해서 곯아떨어진다면 꿈을 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넷플릭스에서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몇 편 골라서 보기 시작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자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덜컹덜컹.
불쾌한 소음에 눈을 떴다. 제길. 다시 어제 봤던 악몽의 현장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무줄기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고 내 앞에 여전히 다섯 개의 문이 보였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섯 개의 문이 열어달라는 듯이 문이 들썩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안에 누군가 있는 것일까? 누군가 저 문을 열어달라고 흔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 누구 있어요?”
내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어둠의 공간에 울려 퍼질 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무줄기들은 나의 목소리에는 반응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중을 유영하고 있었다. 물속에서 수풀이 우아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면 민첩한 물뱀이 되어 노려보면서 내 몸을 조였다. 어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리석게 발버둥 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무에 매달려서 덜컹거리는 문을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없던 정신병도 생길 지경이었다.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누가 고문을 하는지 정체도 알 수 없었다. 손으로 귀를 막아도 덜컹거리는 소음이 내 고막을 파고들었다. 제발 누군가가 나를 깨워주면 좋겠다. 제발 날 좀 깨워줘요.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 몸이 흔들렸다.
“정민 학생, 어서 일어나요. 벌써 8시가 넘었어요.”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도우미 아주머니. 당신이 나를 구했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을 마셨다. 나를 구하러 온 구원자는 곧바로 오늘의 특별 이벤트를 상기 시켜 줬다.
“오늘 학원 처음 가는 날이잖아요. 아침 준비해놨으니까 어서 씻고 내려와요. 사장님께서 첫날 늦지 않게 가라고 신신당부하고 출근하셨어요. “
제길. 오늘은 디데이였다.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제발 악몽보다는 덜 악몽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