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부분 기억상실증이라고 했다. 아,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안락한 내 방의 천장이 보였고, 내가 아플 때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엄마 대신 처음 보는 간병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이곳이 내방이라는 것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날이 몇 월 몇일인지, 내가 왜 침대에 누워있었는지, 왜 내 앞에 낯선 이가 앉아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정민 군, 정신이 좀 들어요?”
“누구시죠?”
“간병인이에요. 정민 군 누워있는 동안 꼬박 3개월을 병간호했어요. 뭐라도 기억나는 게 있어요?”
“제가 뭘 기억해야 하죠?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잠깐만요, 바로 사장님께 전화 좀 드릴게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저 사람이 나의 얼굴을 3개월 동안 뜯어봤겠구나 싶어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내 얼굴 생김새조차 바로 떠올려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간병인이 내 얼굴을 더 잘 알 것이다. 단지 3개월 동안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좀이 쑤시는 느낌이었다. 간병인이 전화하는 사이, 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려 손을 바라봤다. 왼손은 퉁퉁 부어 있고, 오른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3개월 동안 누워 있었다면 음식은 이 작은 바늘로 공급이 되었을 것이다. 24시간 내내 바늘이 혈관에 꽂혀 있었을 테니 손이 이렇게 퉁퉁 부어올랐겠지. 왼손의 부기가 심해져 오른손으로 바늘을 옮겼을 것이다. 왼손 곳곳에 보라색의 멍 자국이 문신처럼 보였다. 얇은 이불이 덮여 있는 발을 까닥까닥해보았다. 말초 감각에는 이상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손바닥에 닿은 머리카락 덕분에 내 동작을 알아차렸다. 정신이 든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이니 그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리라. 손으로 얼굴을 조심스럽게 매만져보았다. 짧은 머리카락이 힘을 주워 손바닥에 저항했다. 그동안 누군가 면도와 이발을 주기적으로 해주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가장 처음 마주한 간병인의 소관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3개월간 잘 관리되었음을 확인했다. 적어도 방치된 것은 아니었다. 간병인은 공손한 말투로 내 방 앞에서 통화하고 있었다.
“사장님, 정민 군. 깨어났어요. 교수님께 바로 연락 취할게요. 이상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그럼요. 오늘 시간 연장 가능합니다.”
통화를 끝낸 간병인은 목에 걸 수 있는 긴 줄이 달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주머니 밖을 빠져나와 대롱거리는 빨간 줄이 거슬렸다. 내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잡아당겨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링거 줄부터 빼줄게요.”
아주 능숙한 솜씨로 바늘을 제거하고 주머니에서 작은 반창고를 꺼내어 붙여 주었다. 수더분하고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능숙하고 꼼꼼하게 처리를 하는 모습이 전문가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입은 옷에는 ‘한국종합병원’이라는 글씨가 패턴처럼 적혀있었다. 전문 간호사인가? 나이를 가늠해 봤을 때는 퇴직을 곧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직했을 나이였다. 퇴직하면서 기념품으로 챙긴 것일까? 아니면 간병인으로서 몸값을 높여 일하기 위해 병원의 이름값을 훔쳐 온 것일까? 그녀는 링거를 빼면서 통화했던 내용을 일부 알려주었다.
“사장님께서는 오늘 늦으신대요. 곧 권 비서님하고 교수님이 오실 거니까. 기다리는 동안 배고프면 먹을 거 좀 준비해 줄까요? 먹을 수 있겠어요?”
내 상태를 파악하려나 보다. 나를 혼자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처한 나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의 방부터 단서를 찾아봐야 했다. 간병인은 기억을 되찾으려면 잘 먹고 기운을 내야 한다고 말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로부터 두 발을 들어 땅을 내딛고 일어서려다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아서 넘어지는 사고는 피했다. 방안은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잘 알고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창문 앞에 놓여 있는 책상 위에 작은 거울이 있었다.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의자에 앉았다. 얼굴에서 특별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익숙했던 얼굴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3개월 동안 작은 방에서 누워만 있었으니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짧은 머리 덕분에 노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피부는 푸석하고 까칠해 보였고, 짧은 머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순간, 절대 내가 하지 않았을 법한 스타일이라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뭐,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괜찮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에 대해 가장 잘 알려 줄 것만 같은 휴대전화는 보이지 않았다. 17살이나 되어서 휴대전화가 없을 리가 없다.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근데 엄마는 어디 갔지? 나의 의식은 엄마를 향했다. 내가 누워있는 3개월 동안 엄마는 괜찮았던 걸까? 내가 아는 엄마는 전혀 괜찮지 않았을 텐데 걱정이 됐다. 아마 약으로 버티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이제 일어났다고 빨리 알려줘야겠다. 엄마와 휴대전화의 행방을 찾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간병인은 토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대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이건 내가 분명 좋아하는 냄새였다. 분명히 음식이 당기지 않았는데 이제는 위까지 음식을 달라고 꿀렁거렸다. 토스트를 뒤집고 있는 간병인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저희 엄마는 어디 있죠?”
간병인은 듣지 말아야 할 단어를 들은 것처럼 동작이 어색해졌다. 저 어색한 몸짓과 난감한 표정은 어떤 의미일까? 물기 묻은 손을 앞치마에 허겁지겁 닦고는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아, 정민 군, 저기…. 그게…. 그건 이따 사장님 오시면 말해주실 거예요. 제가 말하기는 곤란하네요.”
의도를 가지고 물었던 것은 아닌데, 간병인의 태도에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그 사이 엄마와 아빠는 이혼이라도 한 건가? 집안을 둘러보니 엄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생화를 사서 꽂아두던 꽃병은 TV장 뒤쪽에 보관되어 있었고, 엄마가 좋아하는 디퓨져 향도 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3개월 동안 엄마와 아빠는 갈등이 심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늘 그렇듯 사업으로 바빴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 엄마는 감정이 상해버릴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작은 상처에도 온몸이 부서진 것처럼 힘겨워하던 엄마였다. 엄마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었고 아빠는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둘의 사이는 아슬아슬했다. 큰소리를 내면서 싸우지는 않을 때도 불편한 기류가 항상 흘렀다.
간병인은 식빵에 달걀옷을 입혀 버터에 구운 뒤 설탕을 솔솔 뿌린 토스트를 두 조각 건넸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엄마가 유일하게 나의 입맛과 합을 맞춘 음식이었다. 토스트를 먹자, 간병인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올라갔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능숙하게 링거 선을 정리하고, 환자의 취향까지 완벽하게 숙지한 전문성. 내가 3개월 동안 누워있었기 때문에 처음 만들어 보는 토스트일 텐데 이토록 완벽하다니. 엄마에게 배운 것일 수도 있겠다. 예민한 상태에서 엄마는 극도의 완벽주의자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특히 인사나 말투 같은 인간에 대한 기본 도리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내가 11살이었던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3시간 동안 훈육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너를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예의 바르고, 사람들을 배려하고, 따뜻한 사람. 그런데 빤히 같은 공간 안에 있었는데도 왜 인사를 하지 않았던 거야? 11살짜리가 어른을 무시하는 태도는 절대 용납 못 해. 엄마가 눈짓을 줬을 때라도 인사를 했어야지. 엄마는 너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 인사는 인간이 되는데 기본 중의 기본이야. 알겠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해도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엄마는 벌게진 얼굴로 주방 선반 맨 끝장을 열어 구석에 숨겨 놓은 위스키를 한잔 마셨다. 유리컵에 한잔을 가득 채워 한 번에 털어 넣고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인지 박하사탕을 두세 개씩 입에 욱여넣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같이 타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그 할아버지를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나의 11살 9월의 첫 번째 금요일은 완벽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수학 경시대회 수상 소식을 엄마한테 전한 날이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평소 내가 갖고 싶어 하던 게임팩 하나를 얻었다. 하지만 결국 게임팩은 그날 가방에서 꺼낼 수 없었다. 둥근 박하사탕은 살이 없고 얇은 엄마의 볼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는 우걱우걱 박하사탕을 씹어 먹기까지 했다.
토스트를 순식간에 먹으면서 머리에도 피가 도는지 생각의 속도가 빨라졌다. 가만히 생각하니, 엄마와의 기억은 인사를 하지 않아서 호되게 혼난 그날의 기억까지 이렇게 또렷한데, 왜 3개월간 누워있었던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얼굴을 보자 바로 친숙하게 기억나는 권 비서님과 낯선 사람이었다. 나를 진찰해 줄 담당 교수라고 했다. 영화에서 귀족들의 삶에서 엿보던 왕진인가? 내가 깨어난 사실이 즉시 의사까지 왕진해서 확인할 일인가? 의사의 왕진에 누워있던 시간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권 비서님은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익숙했다. 권 비서님도 나를 보자마자 다독이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권 비서님, 저 어디 문제 있어요?”
“뭐 큰 문제는 없어요. 정민 씨가 깨어나길 모두 오래 기다렸어요. 일단 상태부터 살펴볼게요.”
왕진한 의사 역시 ‘한국종합병원’이라고 글씨가 적힌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빠가 그사이 이 병원과 거래라도 뚫은 건가 싶었다. 아니면 실력이 좋은 의사일 수도 있겠지. 아빠의 선택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의사는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의 동공 상태, 맥박, 혈압, 심박 등 기본적인 것을 확인했다. 내 옆에 서 있던 간병인은 의사가 가지고 온 가방에서 주사를 꺼내어 내 팔에서 채혈을 했다. 역시 한 번에 깔끔하게 끝냈다. 둘 다 실력자라는 생각에 더 무게가 실렸다.
“환자분, 이름과 나이를 말해주실래요?”
집까지 찾아와 놓고는 그런 질문을 하다니 황당했지만 3개월 동안 의식이 없었으니 기본적인 것부터 물어볼 수 있지 싶었다.
“이름은 박정민이고, 열일곱 살이요.”
“네, 그럼 오늘이 몇 년도인지는 기억나요? 다니는 학교는요?”
“2025년이요. 곧 고등학교 입학해요.”
의사는 내가 대답하는 말들을 유심히 간이 차트에 기록했다.
“네, 그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일이 뭔가요?”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끼어있는 것처럼 명확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흠, 방학이었던 것 같아요. 추워서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아령만 했어요.”
“네, 정밀검사는 다시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는 권 비서님을 보며 정밀검사 날짜를 잡아서 연락하겠다고 했고, 사장님께는 직접 전화를 하기로 했다. 의사는 혈액이 담긴 통을 가방에 넣어서 바로 떠났다. 권 비서님은 의사를 배웅하러 나갔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의 커다란 통유리 창으로 마당이 보였다. 나뭇잎의 끝부터 노랗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지금이 가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을 하고 이렇게 된 건가? 기억 구석구석을 살펴보아도 입학식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소파에 앞 탁자에 탁상용 달력이 보였다. 달력을 들어 자세히 살펴본다. 2027년? 25년이 아니었다. 27년이었다. 분명히 나는 3개월 동안 누워있었다고 했는데 2년의 공백은 뭐지?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 간병인에게 다가가 날짜를 물어봤다.
“오늘 9월 3일이요. 2027년.”
“27년이요? 그럼 제가 고3이란 말인가요?”
“뭐, 나이로 치면 그런데 학교는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2년이 어디로 갔는지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권 비서님이 들어왔다.
“비서님, 어떻게 된 거예요? 제가 왜 열아홉 살이에요?”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의사 말로는 부분 기억상실증 가능성이 크다고 해요. 몇 개월 전에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은 채 발견했어요.”
“제가 머리를 다쳤어요?”
손으로 머리를 뒤통수까지 매만졌다. 정수리 아래쪽으로 흉터가 만져졌다.
“누군가 머리를 뒤에서 내리쳤어요. 범인은 잡지 못했는데, 2년 동안 정민 씨를 괴롭히던 가해자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하, 2년 동안 나는 또 괴롭힘의 대상이었구나. 기억을 못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 비서님은 아빠의 다른 일정으로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갔다. 나는 허기가 져서 더는 궁금해하지 않고 토스트를 먹었다. 차차 상황을 알게 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