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게 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어떤 의미로든 끄적이게 만들고,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한 큐로 꿰고 싶게 만드는 책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책은 한 인간의 전인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쓰고 싶은 소재가 많아 중간 중간 쓰고 싶은 방향이 참 많이 바뀐 책이었다. 주제는 명확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건 주제가 아닌 곁가지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라는 표현을 비틀어 보자면, '내가 사랑하는 건 곁가지들'인 느낌이랄까. 헤르만 헤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며 떠오른 아무생각 대잔치와 주제파악 한 문단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단상 1. 유년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MBTI
5장까지 정말 흡입력 있게 읽었는데 이는 반에 있는 비슷한 아이들로 나르치와 골드문트라는 두 인물을 그려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MBTI를 분석해 보자면 아마도 나르치스는 INTJ, 골드문트는 ESFP가 아닐까. 고결하고 진지하며 교사를 능가하는 지식을 소유한 매력적인 나르치스, 점박이(말)를 보고 공감하고, 자연을 경외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 골드문트.
마냥 사랑스럽게 여겨졌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스토리는 어느새 불편해지기 시작했는데, 헤세가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통해 결국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의 가르침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를 그려내려 했기에 골드문트의 시점으로 옮겨가면서 나르치스는 사라져 버렸고, 그 사랑스럽던 골드문트는 금단의 구역을넘어가면서부터 내가 골드문트라고 대입했던 우리 반 학생의 미래를 봐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역시, 비극은 가까이서 찍는 것이다.
단상 2. 예술가의 표현법
그런 경험이 있었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꾹꾹 내 안에 담아놓은, 풍요롭고 가득 찬 느낌이 누군가의 질문이나 누군가와의 대화로 다 빠져나가 내 안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비어있는 듯한 느낌으로 바뀐 경험. 그 느낌이 참 별로였다. 분명 나는 무언가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또 처음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완벽한 논리에 의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전달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렇게 한 번 누군가에게 전달된 생각은 더 이상 그만큼의 감흥이 없고, 그 안에서 나는 텅 빈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 비약하건대, 골드문트가 나르치스를 형상화하고 난 뒤의 감정이 그렇지 않았을까. 내적 에너지로 무언가를 분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내면에 무언가가 차올라서 밖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모든 걸 쏟아낸 뒤에 얼마나 허무할까를 생각해본다. 끊임없이 고갈되기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른 경험들로 내면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존재들,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그렇기에 골드문트가 그런 여성편력을 보였을 거라 이해해본다.
단상 3. 자기구현으로서의 단일성
헤세가 풀어놓은 여러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꿰어지지 않을까. 나르치스와의 사랑, 어머니를 향한 사랑, 여자들을 탐닉하는 사랑, 자기구현으로서 의미를 갖는 예술에의 사랑, 그리고 단일성에 대한 사랑.만약 이 책이 예술가로서 자기실현을 다룬 성장소설로만 읽는다면, 골드문트가 마지막에 완성했던 마리아상은 아그네스가 아니라 어머니의 형상이어야 한다. 물론 아그네스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표현했지만, 이야기를 묵직하게 끌고 가던 큰 축은 어머니였기에, 예술가로서 완성된 모습을 담으려면 사도요한 나르치스와 마리아 어머니의 형상이 담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어머니는 사랑, 쾌락, 불안, 굶주림 충동, 죽음의 양면적 이미지를 담고 있고, 이는 이 양면성은 결국 완전성에 대한 상징으로 자기구현의 완성단계에서는 죽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헤세는 예술가로서의 자기구현이 아니라, 자기구현으로서의 단일성을 말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삶과 죽음이든, 선과 악이든, 이성과 감성이든, 사유(정신)의 세계든 예술(감각)의 세계든, 관조적인 삶이든 실제적인 삶이든, 양극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대립되는 개념들은 결국 하나이기에 인생의 양면을 단일성으로 포용하는 가운데 자기실현을 이루어야 한다는, 자기실현을 위하여 자기 자신에로의 내면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 어쩌면 헤세는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골드문트라는 순수한 인물에 담아 마음껏 상상의 세계에서 뛰어놀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