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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24. 2023

나를 외치다

예전에 썼던 글을 읽고 나서..

내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여러 sns에 올리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이 합쳐지길 바라며 같은 해시태그를 달아서 연결고리를 남기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나의 공과 사가 나름 구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해서 다른 흔적을 감춘 채 작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가 쓴 글들을 몇 개 지우면서(그냥 노래만 올렸거나 별 내용이 없는 글들 위주로) 내가 나름 공들여 썼다고 생각한 긴 글들을 발견했다.

어떤 내용으로 썼는지는 알지만(안다고 생각했다) 몇 개를 클릭해서 휘리릭 읽어보았고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으로서는 필요이상으로) 솔직하게, 그냥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며 적은 듯한 느낌의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싱글부모들이 주로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있는 독서문학 클럽에 4년 전쯤에 가입했었고 한 주마다 부여되는 주제에 맞춰서 글을 올리는 과제를 받았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그 글쓰기가 재미있었는지가 기억난다. 왜냐하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한주 동안 생각하면서 어떻게 글을 써가야 할까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고민하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생각에만 머물렀을 때는 미처 발견하거나 떠올리지 못했던 내용들을 글을 써나가면서 (마치 손가락이 글을 쓰다가 의견을 제시하듯  딱히 머리를 쓴 것 같지 않은 느낌으로!) 쓰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내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글쓰기의 묘미이고 즐거움이겠지.

 주제가 어떤 것들이었냐면, 나의 버킷리스트, 나의 상처 돌아보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등등 각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여 쓰는 것도 있었고 자유주제나 연애소설 쓰기 같은 좀 더 자유롭고 하지만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까다롭기도 한 것들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글 중 몇 개를 읽어보니, 나와 관련한 주제의 글들에서 살짝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몇십만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서, 누가 가입해 있는지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고(하긴 온라인에 쓴다는 건 다 이걸 전제로 한 것이겠지만..)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그곳에서 나는 겁도 없이 꽤 솔직하게 내 경험이나 생각, 직업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진지해야 하거나 전문적으로 보여야 할 필요가 없는 친목 중심의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나는 더 과감하게, 정제하지 않고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방금 내 손가락을 통해 떠올랐다. 어쨌든, 그곳에 내가 쓴 글을 다시 들춰보니 문단을 나누지 않고 주르륵 써놔서 가독성이 떨어지고(그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몰두하고 신나 흥분하면서 썼을지 눈에 훤히 보인다…)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조금 뭉뚱그리거나 돌려서 표현하지 않고 지금의 내가 보기엔 당황스럽게도 솔직하고 자세하게도 적어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정독하진 못했고 몇 줄 읽고  생각했다. ‘아!……’

또 그다음 몇 줄 휘리릭 읽고 ‘아… 어떡하지 ㅋㅋ 난감하게 이거…’


학창 시절에 짝사랑하던 남자아이에게 고백하려고 밤늦게까지 작성했던 편지를 다음 날 아침에 읽으면 심각하게 오글거리다가 찢어버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듯.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나서 작성한 나의 글들에서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이론을 여러 번 언급하며 아는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몇 년 후에 읽으면 깨닫게 되고 낯부끄럽듯이..

하긴 뭐… 지금의 나의 글도 꽤 솔직한 편이긴 하지. 그건 아마도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 중에 ‘정직’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은, 그리고 글이 들어간 내 그림들은 기록이고 내 생각에 기록은 진실함과 정직을 담아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기록에 대한 나의 진심이고 스스로에게 솔직하려는 나의 노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록 중 일부는 내가 나중에 이 세상에 없을 때에도 아이 곁에 남아 아이에게 위로를 해주거나 의지가 되어줄 이야기이자 편지라고 생각한다.

그 글들을 적었던 건 4년 전쯤이고, 그때는 만 나이로 30대의 마지막 즈음이었다. 그리고 난 지금은 40대이지. 앞자리가 바뀌면서 불혹의 나이이니 삶의 무게감이나 시선에 따라 달라진 걸까 아니면 그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더 성숙해졌다고 봐도 되는 건가. 그래 내가 성장은 했겠지! 그리고 감정들도 더 가라앉아있기는 하겠지.

거침이 없고 겁이 없는 느낌이야 확실히 지금의 나와 비교했을 때.

과거의 나야… 그래도 괜찮은 거니.. 아냐 하긴 지금의 나도 나이에 비해선 거침이 없고 겁이 없는 편인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보다 어린 나는 더한 것 같은데?


그래서 그 글을 지워버릴까 고민했다.

그냥 버튼 하나 누르면 삭제되고 이런 고민들이 끝나는 간단한 일인데도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단순하게 그냥 하루 일과에 대해 주절거렸거나, 기분이 어떻다는 둥 노래가 어떻다는 글이면 고민하지 않고 지울 수 있지만, 몇 년 전의 내가 신나서 마음을 담아 적은 글이잖아. 그 당시의 내 생각과 진심을 담겨 있잖아. 지울 수도 없고 한편으로는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약간 일었다. 그러면 그곳에서는 글을 지우고, 다른 곳으로 비공개로 전환하여 옮겨놓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 정도로 내 진심이 담긴 글이 부끄러운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그것도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내 일상을 담은 그림을 올리는 인스타그램이나, 이렇게 쓰고 있는 글들 그리고 출판했던 책(공동출판)도 다시 꺼내어 읽어보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글이나 그림에 내 고민이나 감정덩어리를 담아서 내보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안에 고여있는 감정을 그렇게 담아서 덜어내고 덜어내고 해서 오히려 나의 내면에서는 그 감정들이나 생각들이 해소되고 분출되어 많이 옅어져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서 그 생각이나 감정들에는 그 당시의 내가 듬뿍 묻어있는 거겠지. (방금 손가락이 또 생각해 냈다.) 그리고 혼자 몇 줄 읽고 건너뛰고 몇 줄 읽고 건너뛰고 해서 그렇지 막상 쭉 읽으면 괜찮은 글일 수도 있는 거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같은 주제로 다시 글을 써보던지, 기존의 글을 수정해서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면 원래의 글을 지울까? 이 문장을 쳐놓고 한참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해 봐도 역시 안 지울 것 같다. 내 과거의 한 부분이니까 과거의 나도 나이지. 그러니까 부끄러움은 일단 넣어두어야지.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지. 다른 사람들의 글이나 댓글등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색깔이라고 할지 특유의 느낌이 구분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참 매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한동안 혼자 괜히 주눅이 들고 비교가 되어서 이렇게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사실은 지금도 약간 그런 생각이 남아있기도 하다.)

 한 시인의 매미의 울음에 대한 시를 떠올리며 모두가 이렇게 사방에서 자기 소리를 들어달라고 울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내가 울어도 내 울음소리는 묻히고 말 거야. 더 예쁘고 멋지게 우는 매미들이 많잖아.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든 생각인데, 울고 있는 그 과정 자체에서 내가 힐링이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7~8년 땅속에 있다가 나무 위에 올라와서 한철 울다가 끝나는 매미라서 비교하기엔 약간 무리인지 모르지만, 주변 매미를 의식하면서 저 소리에 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야 하고 울음을 멈춰버린다면 그 매미는 정말 바보고 불쌍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로 용기를 냈다.  나중에 읽어보면 ‘아니 글을 왜 이렇게 썼어?’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냥 쓰고 싶은 대로, 너무 많은 생각이나 자체 검열을 하지 않고 일단 글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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