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가 신곡으로 나오자마자 알게 된 게 아니라, 몇 개월 지나고 나서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바흐의 air on g string(g 선상의 아리아) 멜로디로 시작하는 걸그룹의 댄스곡?…
클래식을 피처링해서 넣은 노래라면 웬만해선 다 좋은데.. 이 노래는 어떨지 엄청 기대하며 들었다.
내가 바흐노래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을 물으면 나는 바흐노래면 웬만하면 좋아한다고 할 거고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은 무반주 첼로곡이라고 할 테니까..ㅋㅋ 사실이 그러하고..
어쨌든 듣고 나니, 이 곡에 맞추어 어떻게 춤을 출지가 너무 궁금해져서 뮤비를 검색했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명화 속 유명한 장면들이 나오고, 레드벨벳이라는 걸그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기괴한 동물들과 뒤 배경….
이거… 보쉬그림인데???? 어?? 진짜 보쉰데? 진짠데??
책장 어딘가에 있을 보쉬책을 찾았다. 내가 20대에 이 화가에 관심이 많았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샀던 기억이 난다. 의미가 있는 책인데.. 버렸을 리가 없지. 이혼할 때 많이 버렸지만.. 이 책은 있겠지.. 한참을 뒤지고 난 후에 찾았다. 있다!
Bosch니까 보쉬같은데 우리나라에서 검색하려면 보스라고 검색해야함..
날짜를 확인하니.. 2004.03.21.
20대에 내가 최고로 마음이 힘들었을 때.. 였다.
동네에서 고만고만한 친구들하고만 놀다가 대학에 가면서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만나고.. 그쯤 시작이었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프기 시작했고.. 위장병 나서 입원해 있던 나에게 여러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나보다 더 아파하고 울어주어, 고맙고도 기쁘게 해 주었던 친구들도 있었고… 나를 더 절망스럽게 만든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친구가 준 선물을 들고 와서 자랑하고 연애얘기하다 가는 사람.. 헤어진 연인이야기를 병상에 누워있는 나에게 쑤셔 넣듯 몇 시간씩 전화해서 이야기하는 아는 오빠.. 등등 등등 등
인간은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 왜 아프다는 사람에게 까지 찾아와서 자기 말만 할까.. 아.. 내가 열받는 이유도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고 자기들 이야기만 해서인가? 그러면 나도 마찬가지네.. 그럼 이건 인간의 본성인가? 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동물보다 못한 거지?(그 당시 생각) 말이라는 게 있어서 그런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감정에 휩싸여 그런가??
온갖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개월, 몇 년에 걸쳐 내린 결론은.. 인간은 그냥 그런 거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쯤 이후부터 나는 자기 말을 하고 싶은 욕구를 잠시 누르고 남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진짜 심각하게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나보다 하수로 내려다보는 기준이 생겼다.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그때 정말 암흑을 걷는 울적한 마음이었는데 허튼짓이나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그 대신 나는 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주로 죽음과 관련한 책이었다. 그리고 종교와 관련된 책들. 고딕&중세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 화가에게 끌렸던 것도 기괴함, 그리고 종교화였기 때문이었단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가 나의 중세시대였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어두운 시기.. 그리고 그 시기를 넘기고 소화해 낸걸 발판 삼아 르네상스가 왔지… ㅋㅋ 이전과 다른 깊이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때 삶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여러 가치관도 세웠던 것 같다. 그래서 어두웠지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평가한다.
어쨌든..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때 정말 외롭고 힘들었을 20대의 내가 정말 안간힘을 쓰며 살려고 노력했구나, 그것도 매우 건전한 방법으로 애썼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40대의 내가 20대의 나를 만나는 상상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웃으면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동안을 바라볼 것이다.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그리고 고맙다고 하고 싶다.
네가 힘들었던 시기조차 잘 버텼기 때문에, 그리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잘 살아왔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이어져 빛나고 있어.
정말 대견해.. 잘했어~ 그리고 네가 자랑스러워. 쉽지 않았던 거 알아. 이 노래에 바흐랑 보쉬가 나온다?
대중음악에서 그 둘이 나와. 이 노래는.. 우리 둘의 노래야. 같이 들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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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뭔가에 꽂히면 저는 여러 가지를 쳐가면서 검색합니다..ㅋㅋ
요즘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면서 g string에 꽂혀서 여러 버전을 찾아서 들었어요…
생각해 보면 이런 버전들이 좋은 건 기본적으로 원곡을 알고 새로운 노래를 들을 때 원곡도 같이 마음속에 흐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늘 아들 면접일이고 저도 아팠어서.. 하루 종일 잤더니 잠깐 나가서 동네 한 바퀴 하고 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