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미안해요 ᆢ 전하지 못한 그 시간들

by 밥티스트

언제나 내 눈은 밖을 향해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돌봐줄 틈도 없이 그저

온통 보이는 것을 향해 눈이 번득이면서 살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사적시간 여유가 생겨서 문득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이 생겨났고 틈틈이 집안에

물건들을 정리했다


나로 인해 생긴 것들이 서로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짓하는 듯했다


문득 오래전 누군가의 아픔이 스며들어간 일기장 하나를

발견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은 뜨거움이 차올랐다


#도시의 아이들

거리에 도시의 아이들 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송이 장미를 ~ 종이에 곱게 싸서 ~어제도 오늘도

하염없이 기다리네 ~~


흥얼흥얼 하기 너무 좋은 멜로디를 따라서

빛바랜 오래된 과거 속 어느 공원 그 시간

앞에 이르렀다


제니와 만나기로 한 시아는 마이마이 이어폰을 꽃은채

흥얼거리고 있다


멀리서 오월 햇빛에 쨍하게 눈이 부신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만지면 밀가루가 묻어 나올 것 같은 하얀 어깨 피부를 드러낸

탑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백인 소녀가 등에는 커다란 기타 가방을 메고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다


시아와 마주한 금발 소녀 제니 그 둘은 손을 마주 잡아 깍지 끼고 빙빙 돌면서 깡총거렸다

밥 먹었어? 살갑게 묻는 금발의 제니는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흰 피 부어 파란 눈을 가진 금발의 소녀는 혼혈아이다

우리 동네 가장 눈치꾸러기 그녀 양공주의 딸이라고

이유 없이 손가락질당하고 심지어 출생신고가 안되어 있어 학교를 다닐 수도 없는 처지였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그저 아무렇게나 되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이 동네 이유 없는 동네북이었다면 시아는 그녀와

양대산맥을 잇는 동네 천덕꾸러기였다

잘생긴 바람둥이 아버지 덕에 동네 여자들이 들썩들썩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통에 바람 잘날 없었고


바람을 피우고도 너무도 당당한 그녀들은 서방 간수

잘하라면서 시아의 집 대문을 닳도록 드나들며

순한 시아의 어머니 머리채에 화풀이를 해대는

통에 시아와 동생들도 싸잡혀 잡놈의 새끼들로

전락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오월

두 소녀는 은 오월의 첫날 만나서 오디션을 보러 가기로

했다

두둥 오늘이 바로 그날

시아는 학교를 제치고 제니와 만나 공원에서 마지막

연습을 마친 뒤 오디션을 보러 가기로 했다

시아는 맘을 굳게 먹고 학교를 벗어나기로

맘먹었다

아빠로 인해 늘 지옥 같은 집은 싫었지만

따뜻한 엄마가 있어서 망설였던 가출을 감행한 것이다


학교에서 그 시절에는 왕따라는 개념과 단어는 없었지만

왕따는 있었다

심지어 시아의 중학교 때는 부잣집에 예쁜 옷에 공부도 잘하는 전교 왕따도 있었다

뭘 해도 욕을 먹는 같은 학년이 아니어도 다 알고 있는

전교생 기피 대상 ᆢ

고등학교에 올라온 그녀는 자살했다는 소문도 흉흉히

흘러 다녔다


그렇듯 천덕꾸러기 시아의 학교생활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뻔한 형편이니 ᆢ제때 수업료를 내지 못하던 시아는

아침마다 교탁 앞에 불려 나갔다


이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좀 억울한 매타작을 당했다

수업료를 가져오라 했는데 안 가져오는 이유는

선생의 말을 기만하는 행위라 매를 때리는 거라고 ᆢ


단발 밝은 노랑의 염색을 한 오십 대쯤의 여선생은

참 가혹하고 잔인했다

웃으면서 때리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뭔 죄냐 ᆢ 부모 잘못 만난 죄지 ᆢ


이렇게 벌주고 때리는 이유가 수업료를 낸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려는 거라나 뭐라나 ᆢ

공짜로 수업을 들으려 하는 것부터가 돼먹지 못한

생각을 가진 부류들이라고 하면서 ᆢ


얼굴 보는 것도 부담되니 복도에서 수업을 들으라고

배려 차원에서 복도 창문을 열어두신다면서ᆢ

그 뜨거운 배려심에 탄복하면서 몇 날 며칠을 견디다가

결국 ᆢ 그날은 배려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스탠드

그 시절에 유행하던 유흥업소 중에 스탠드 빠라는

것이 성행하고 있었다

오디션을 본다는 장소가 스탠드 빠였다


나름 큰 무대가 있고 늘씬하고 짙은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언니들이 혹은 같은 또래의 촌티 나는 화장과

옷을 입은 여자애들이 우글거렸다


대기실에서 다른 오디션 참가자들이 있었고

밴드 아저씨들이 이유 없는 욕지거리와 함께

소란스러웠다

잔뜩 겁에 쫄아든 시아와 제시는 손을 꼭 잡고

한쪽에 앉아 기타 튜닝을 하고 입을 맞춰 노래

연습을 했다


순서가 다가오고 무대를 오르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우리를 거칠게 잡아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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