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
나는 예전에 헤어디자이너였다
스므살에 일을 시작하면서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이 경기도 도처에 있는 여자 기술학교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기술학교에 가서 미용 실기를 훈련
시키는 일이라 편하게 마음먹고 그곳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겨울이 진짜 추웠다
추운 눈보라 속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
나와 그녀들의 기막힌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부대 영내에 있는 헤어샾
바람소리와 함께 탁탁 발을 털며 누군가가
들어온다
군화 발소리가 한 명은 아닌 듯
수선스럽게 들린다
동두천 미군 부대 안에 있는 헤어샾에 근무하던 나는
우연히 미군 장교를 알게 되었고 그 친구로부터
기부와 봉사하는 삶에 대해 세뇌를 당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군인과 캬츄샤 영민이가
싱글거리며 들어왔다
헤이 ~ 수잔 ~
누군가 입구에서 내 오글거리는 영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수잔 은 이 부대 안에서 불리는 내 영어 이름이다
일 년쯤 들었는데도 이 망할 수잔이란 이름은
정말 솃~이다
혼자 뻘쭘 해하는 나에게 눈을 찡끗 거리며
영민이 다가온다
카츄샤 영민이는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이곳에 일할수
있게 소개한 친구다
수잔 오늘 내가 제임스 데리고 우리가 후원하기로 한 곳에
가보려고 왔어
같이 가보자
제임스가 큰 키를 흔들거리며 흐느적흐느적 다가왔다
묘한 외국인의 향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나도 큰 키를 올려다보며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봉사와 기부가 생활화
되어 있다고 한다
싸진 계급이었던 그는 영민과 함께 시간 날 때 함께 봉사를 해보자고 틈만 나면 졸라 댔다
영민과 제임스는 영어를 가르치고 나는 미용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하고 그 기술학교로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눈보라까지 휘몰아치고 있었다
눈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겸 우리는 동두천 부대 앞
외국인이 운영하는 유명한 햄버거 집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제임스와 주인은
한참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인사를 나누었다
하이파이브에 허그에 어깨빵에 요란스러운 인사가 끝나고
우리는 앉아서 주문을 했다
그때 당시는 햄버거가 그렇게 유행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동두천이나 이태원 용산 등지에서나 피자 햄버거를
맛볼 수 있었고 그나마 일반 사람들은 그런 음식이 있는
줄도 모르던 때였다
메뉴는 다영어로만 되어 있어 영민이와 제임스에게
주문을 맡기고 나는 체리콕 하나만 시켰다
체리맛이 나는 콜라인데 ᆢ 일반적으로는 먹어볼 수 없지만
부대와 이곳에 오면 맛볼 수 있는 콜라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때 당시 부대에서 일하면 달러로
주급을 주고 부대 내 환전소에서 만 환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대신 부대 내 PX에서 물건을 사면 더없이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물건으로 사서 밖에서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산더미 같은 햄버거 하나씩을 받았다
그 타워 버거는 지금도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우리 셋은 우적우적 햄버거와 콜라를 욱여넣고
킬킬 대며 ᆢ
창밖을 살폈다
오 마이갓 ~ 날이 개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계산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난 햄버거 먹자고 안 했는데 ᆢ
더치페이한 것에 몹시 억울해하며 터덜터덜
따라갔다
기찾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탱강탱강 건널목에서
종소리가 나고 가림막이 내려졌다
기차가 지나가는 모양이다
우린 잠시 껄렁대며 서있다
가림막이 올라 가자 마자 뛰었다
제임스가 수잔 go~ 하며 팔을 낚아채는 바람에
정신없이 서있다가 눈길에 미끄러졌다
키 작은 나를 한 팔로 번쩍 들어 올리는 바람에
엉덩방아는 면했다
영민이가 깔깔대며 러브스토리 찍냐고 놀려댔다
제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sorry를 연발했다
우리는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그곳에 도착했다
높은 회색 담이 둘러쳐 있고 입구에는 진한 하늘색
철창이 커다랗게 막아서고 있었다
순간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린 침묵했다
벨을 누르니 곱슬 단발머리에 차가운 얼굴에 검정 원피스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50대쯤 보이는
또박또박 여자가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안경을 끼고 날카로운 째진 눈매에 금테 안경 너머로 얼굴 전체가 곰보 자국이 뒤덮여 있었다
누구시죠?
차가운 외모와 달리 목소리가 온화했다
우리는 잠시 경계심을 풀고 ᆢ
아 , 저 오늘 봉사단 면접 보러 오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영민이가 또박또박 단정한 말투로 소개를 하자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가로 놓인 잠금쇠에 열쇠를 넣고
풀었다
아, 느낌이 이상하다
우리 일행은 그 여인의 안내를 받으며 쭈뼛거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있는 돌길을 걸었다
운동장에는 추운데도 하늘색 운동복을 입은 앳된
여자들이 피구를 하고 있고 근처 하단에는 같은
하늘색 운동복을 입었지만 5~60대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 한 여인들이 겨울이라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꽃대들을 꺾어 흔들고 있었다
헤이 ~ 양키 휘익 휘익 손으로 휘파람을
불어댄다
우리 일행에게 관심을 보이자
반대편 단층 건물에서 남지 한 명이 빠르게 뛰어나온다
야 , 거기 줄 서 인원 체크하고
빨리빨리 휘리릭 삑삑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회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뛰어나와 줄을 세우고
반대편 건물로 일사불란하게 데리고 들어간다
우리는 순간 움찔하며 ᆢ
서로를 마주 바라봤다
무섭다 , 그렇지?
내가 영민이 한테 속삭였다
제임스도 슬쩍 이상한 감을 느끼는 듯했으나
이내 밝은 표정으로 그녀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앞서가던 여인은
그런 행동은 삼가 주시면 좋겠어요
옛서~
제임스는 알겠다는 제스처로 경례를 하며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다
이윽고
우리 일행은 사무실에 도착했다
특이하게 사무실 문들이 철 문으로 되어있다
철 문 사무실 안에 있는 방 앞에서
여인은 누군가를 불렀다
총무님 ,
안에서는 총무님이라는 분이 나왔다
18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큰 키에 약간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할아버지였다
70대는 되어 보이는데 흰 백발이 멋진 온화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오~
어서들 와요
반갑습니다.
우리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손짓했다
우리는 앉기 전에 쭈뼛쭈뼛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왠지 스산한 이곳 나와 그녀들의 만남
그렇게 그곳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
그때까지도 우리에게 그런 운명이 도사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