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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동자 Mar 15. 2022

3월 7일 ~ 13일

10주

샹그릴라

3월 7일. 월요일


즐겨보는 여행 프로그램에

샹그릴라가 나온다.


중국 윈난성 리장 너머 티베트 인근에 있는 도시 샹그릴라


사실 샹그릴라는 구체적인 지명이라기보다

막연한 그 어딘가의 이상향 같은 의미가 크다.

그리고 그 이상향과 가장 닮은 곳을

소설 속에서 샹그릴라라고 처음 불렀단다.


화면 속의 티베트 고원과 설산

그 아래 펼쳐진 푸른 초원과

야크 치는 소년의 해맑은 눈동자가

평화로운 낙원의 모습 그 자체다.


아주 정직한 눈으로 소년이 말한다.

자기가 있는 그곳이 샹그릴라라고.


나도 그림 같은 저기 상그릴라에 가면 소년처럼 행복해질까?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현지인에게 물어본다.

"당신의 샹그릴라는 어디에 있나요?"


평생 샹그릴라를 꿈꾸던 탐험가를 만났던

90대의 노인이 말한다.


"나의 샹그릴라는 내 마음속에 있어요."



멤버십 쇼핑

3월 8일. 화요일


쿠팡 와우 멤버십을 해지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료가입이 아니었으니

한 달 무료 체험하기가 끝났다는 게 맞을 거다.


이 멤버십에 가입하면 회원가로 할인도 되고

냉동, 냉장에 신선 식품도 배달이 된다.

무료 반품도 되고

심지어 쿠팡 플레이로 영화나 드라마도 볼 수 있다.


무료이긴 해도 회원이 아닐 때는 몰랐는데

필요한 물건만 생기면 쿠팡을 들어가 검색하는 나를 발견한다.


전에는 그냥 가까운 동네 슈퍼마켓을 찾거나

급하지 않은 물건은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근처 대형 마트에서 한꺼번에 주문하곤 했다.


그런데

주문만 하면 다음날 배송에 심지어 새벽 배송까지

솔직히 새벽에 쓸 것도 다음날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무료배송 가능한 금액 채워서 자꾸 주문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소한 물건들로 문 앞에 택배가 쌓이다 보니

한 달 무료 체험의 힘을 새삼 느낀다.

'이런 게 미끼 상품이지!'


꽤 편리하게 잘 사용했지만

몇백 원 아끼자고 무언가 더 큰 걸 막 쓰는 것 같은

이 찝찝한 멤버십 쇼핑을 그만두었다.


왠지 명치끝에 걸린 무언가가 쑥 내려간 기분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3월 9일. 수요일


애써 무심한 듯 그러나 초조한 하루가 지나갔다.


세상엔 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분명한 사실도 인지 못하는 것 같다.


똥인지 된장인지 정말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들

자기들은 어떤 경우에도 똥 먹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 발등 찍은 사람들 꼭 그 응분의 대가를 치르길 빈다.


다만 나는 절대 그 책임을 나누어 짊어질 생각이 없다.

세상을 함께 산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과만 살아가고 싶다.



파마하기 좋은 날

3월 10일. 목요일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좌절과 분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냥 있을 수도  없을 때,

이럴 때 제일 만만한 게 내 신체를 괴롭히는 일이다.


지금 당장 예약 가능한 미용실로 가서

코로나 후 2년 만에 처음으로

제일 센 파마를 했다.


소위 미친 X 머리처럼 나온다는 히피펌.

손질이 좀 어렵다며 살짝 만류하는 미용사 샘의 충고도

가볍게 패스하고.


거울 속 내 폭탄머리가 어찌나 속이 후련한지

머리야 네가 성질 괴팍한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



해장 칼국수

3월 11일. 금요일


폭탄머리 파마에도 분이 안 풀려

맥주에  와인 한 병, 담근 레몬주까지

근래 들어 최고로 과음을 했다.


나이 들수록 술을 이기지 못하는 내가 싫어

딱 음식에 곁들이는 음료 정도로만 즐겼는데

어제는 작정을 하고 마셨다.


역시나

울렁거리는 속과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밤새 잠을 설치며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게 술이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일어나

끓인 누룽지로 쓰린 속을 달래 보지만 영 시원치 않다.


부글거리는 게 술 때문인지 화 때문지 모르지만

이열치열이라고

쓰린 속에 더 매운 칼국수로 해장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3월 12일. 토요일


남의 집 불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주가 넘었다.

처음에는 전쟁 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폭격과 전쟁 피해, 힘겨운 피난민 소식에도

내 친구의 일인 양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직도 전쟁 중이야? 어디가 함락됐네, 무슨 무기를 썼네.'

 하는 무슨 배틀 그라운드 게임 속 이야기처럼 한다.


최근에 일어났고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마치 그런 전쟁은 없었던 것 같은

시리아 내전이나  팔레스타인 공격처럼 말이다.



봄비

3월 13일. 일요일. 비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날.


새벽에야 잠이 들어서 눈을 떴을 때

10시는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아침 7시에

창밖을 보니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고 있다.


웬일로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수부터 하고

오래간만에 책을 들고 여유롭게 비스듬히 누웠다.


'참 운치 있는 일요일 아침이네...'


분명 이랬는데 다시 눈을 뜨니 12시다.

꿈이었나 싶은데 옆에 책이 널브러져 있다.


저녁엔 갑자기 저녁 설거지까지 다 끝내고

우산까지 챙겨 비 오는 길에 늦은 산책을 나섰다.


아무래도 이 모든 게 느닷없는 봄비 때문인가 싶다.


아직 다 꺼지지 않은 근래 최악이라는 산불에

단비가 되었다니 그래도 참 고마운 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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