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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동자 Mar 21. 2022

3월 14일 ~ 20일

11주

딸기와 생크림

3월 14일. 월요일


겨울부터 나오기 시작한 딸기가 한창이다.

언젠가부터 딸기만 보면 생크림이 떠오른다.


보통 딸기에 생크림을 찍어 먹거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떠올리는데

나는 딸기 생크림 샌드위치가 제일이다.


식빵에 생크림을 잔뜩 바른 후

그 위에 딸기를 통째로 올리고

다시 생크림 꽉꽉 채워

그 위에 식빵 한쪽을 덮는다.


랩으로 돌돌 말아 한동안 눌러 놓았다가

반으로 잘라 놓으면 빵 사이사이

하얀 생크림과 빨간 딸기가 환상의 짝꿍이다.


생크림도 빵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조합만은 참을 수가 없어

일 년 동안 먹을 먹을 생크림과 샌드위치를

이 한 철 다 먹어 치운다.


맛있으면 0칼로리라는 말도 있지 않나!

제철 딸기가 한창일 때

딸기 생크림, 딸기 라테, 딸기 주스

봄이 주는 작은 기쁨 실컷 누리련다.



봄 철새

3월 15일. 화요일


오랜만에 강변으로 산책을 갔다.

겨우내 집 근처만 맴돌았는데

봄비도 내리고 맑아진 공기에 저절로 발이 나간다.


시원한 강바람과 풀숲의 새싹들이

봄기운을 뿜 뿜 내지르고 있다.


저절로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데

하늘에 한 무리가 새떼가 줄지어 날아간다.


늦가을 무리 지어 가는 새들은 여러 번 봤는데

봄에 이동하는 철새는 처음이다.


겨울을 나고 돌아가는 것인지

봄이 되어 돌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도 동물도 봄이 오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나 보다.



유튜브 단식

3월 16일. 수요일


2022년에 새로 세웠던 계획 중의 하나가 유튜브 줄이기다.


언젠가부터 뉴스도 영화도 드라마도 모두 유튜브 동영상 클립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음악까지도.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은 안 본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냥 TV 대신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좀 보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인가 싶었다.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니 화면 하나에는 작업창을 나머지에는 유튜브를 켜 놓고

필요할 때만 슬쩍슬쩍 곁눈질, 참 능률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한눈팔기가, 소위 말하는 멀티태스킹이

멀티로 작업을 잘하는 게 아니라 멀티로 일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작업도 영상이나 음악도 뭐 하나 분명히 기억나는 건 없고

일의 진행 속도만 마냥 늘어졌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먹고 2022년 최우선 고쳐야 할 습관으로 꼽았는데

어느새 3월,

 붉은 글씨로 모니터 앞에 써 붙여둔 'No 유튜브 ' 메모조차 온 데 간데없다.


지난주부터 어쩌다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유튜브 안 보기.

처음에는 안절부절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시간도 더디갔다.

그러다 책을 손에 잡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 하나씩 하다 보니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한 가지씩 마무리되고 있다.


유튜브가 멈춘 시간, 내 생각과 능률이 돌아오고 있다.



차(tea)를 사는 이유

3월 18일. 목요일


식료품을 보관하는 수납장을 여는 데 작은 상자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다양한 차(tea) 상자들이다.


겉포장도 안 뜯은 각종 차 상자들이다.

사놓고 구석구석 쑤셔 박아 놓은 것들로 수납장이 폭발 직전이다.


당장 먹지도 않을 걸 왜 저렇게 자꾸 사들였을까?

마트에 갔다가 할인을 해서,

온라인 쇼핑 시 무료 배송 금액을  채우려고

또는  해외직구 시 국내에 없는 제품이라는 이유로

온갖 핑계로 저 많은 차들을 사들였다.


오히려 하루에 한 잔 이상은 먹는 커피는 쌓인 게 별로 없다.

자주 먹어서 남은 게 없기도 하겠지만

먹을 게 있으면 많이 사놓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차를 살 때는

정말 먹고 싶어서 구매한 적이 별로 없다.

심지어 차가 들어있는 틴 케이스가 예쁘다고 사기도 했다.


차를 마시려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차를 사는 게 목적 같다.


TV에서 물건을 주문 후 택배 상자도 뜯지 않고 그대로 쌓아두는 사람들을

쇼핑중독이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아침저녁으로 저 차들을 부지런히 먹어 치워야겠다.

내 쇼핑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증거인멸을 위해서.



수선화

3월 18일. 금요일


3월 초에 주문한 모종들이 드디어 왔다.

주문하고 거의 2주는 걸린 것 같다.


하나하나 주문한 화분과 모종을 꺼내는 데

내가 이것도 주문했나 싶다.


그중의 하나, 봄이면 꼭 사는 수선화.

구근을 잘 보관하면 다년생으로 키울 수도 있다는 데,

재주가 없는 나는 매번 실패한다.


주말에 분갈이할 생각으로 대강 거실 한쪽에  놓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나만큼이나 성질 급한 

샛노란 수선화가 피어 있다.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서 피었다는 수선화,  

볼 때마다 왠지  그의 나르시시즘이 납득된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꽃으로 환생한다면 무슨 꽃일까?

이름 없는 들꽃? 


들꽃은 무슨? 


그냥 잡초지...



무기력

3월 19일. 토요일


이젠 진짜 봄인가 했는데 요 며칠 다시 춥다.

날씨라는 게 참 변덕스럽다.


변덕스러운 건 날씨만이 아니라 내 컨디션도 마찬가지다.

새해 들어 열정! 열정! 을 외친 지 한 달도 안돼

설 지나자마자 비실비실거렸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 파이팅을 외친 지 또 한 달 남짓,

봄바람이 불면 분다고 마음이 살랑이고, 

추워지면 추워졌다고 몸이 움츠러든다.


이놈의 무기력증은 모든 게 문제고 모든 게 이유다. 



분갈이

3월 20일. 일요일


미루고 미루던 화분 분갈이를 드디어 했다.

날이 좀 풀리면, 주말이 오면

온갖 핑계로 미루었다.


봄이라고 사들인 화분들이

어느새 임시 포트에서 새 잎이 나고 꽃이 활짝 피어 버렸다.


늦은 오후 시작된 분갈이가

저녁을 먹고 밤이 돼서야 겨우 끝났다.


오랜만의 육체노동에 허리, 다리가 뻣뻣하지만

마음에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가 빠진 기분이다.


예쁜 화분으로 자리를 옮긴 화초들처럼

봄바람에 갈피를 못 잡는 내 마음도 다시 단단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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